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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연애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지라는 말이 버거울 때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은 압니다. 그래도 명절마다 모임마다 소개해 주겠다는 말을 듣다 보면 숨이 막힙니다. 자주 듣는 말 앞에서 내 속도를 지키는 대답을 모았습니다.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지라는 말이 버거울 때AI 모델 사진

이혼하고 반년쯤 지나면 사람들의 인사말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괜찮냐고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걸 묻습니다. 만나는 사람은 있어? 엄마 친구 아들이 있는데. 너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지. 걱정에서 나온 말인 걸 알기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들을 때마다 웃어 넘기기도 지칩니다. 자주 듣는 말 몇 개를 골라 그 뒤에 숨은 마음과 돌려줄 대답을 붙여 봅니다.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지"

가장 흔하고 가장 선한 말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내가 혼자 있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덜 힘들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이 말이 지금의 나를 아직 덜 된 상태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혼자인 지금은 임시이고, 누군가를 만나야 비로소 괜찮아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길게 반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마워. 나는 지금도 꽤 괜찮게 지내." 상대의 마음은 받고, 깔려 있는 생각만 살짝 고쳐 주는 대답입니다. 같은 대답을 몇 번 듣고 나면 상대도 내가 정말 괜찮은지 다시 보게 됩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만 만나 봐"

여기서부터는 말이 아니라 일정이 됩니다. 친척 어른이, 직장 선배가, 친한 친구가 사람을 골라 왔습니다. 한 번만이라는 말 때문에 거절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한 번쯤이야 싶다가도, 그 한 번에 주선자의 체면과 상대의 기대와 내 저녁 하루가 한꺼번에 걸려 있다는 걸 압니다.

마음이 없다면 처음에 분명히 거절하는 쪽이 모두에게 덜 미안합니다. "마음 써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데 나는 아직 누굴 만날 기운이 없어. 이번엔 사양할게." 이유를 길게 대지 않는 게 요령입니다. 이유를 대면 상대는 그 이유를 하나씩 풀어 주려 합니다. 애는 내가 봐 줄게, 밥만 먹고 오면 돼, 하는 식으로요.

등 떠밀려 나간 자리에서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나가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어른이 이미 날짜까지 잡아 놓은 경우처럼요. 억지로 나간 자리에서는 표정부터 굳어 있어서 상대에게도 실례가 됩니다. 앞에 앉은 사람도 비슷하게 떠밀려 나왔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시작해도 됩니다. "실은 저 주변에서 권해서 나왔어요. 혹시 그쪽도 그러세요?" 이 말 한마디에 서로 웃음이 터지고 부담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연애 상대가 아니어도 같은 처지의 사람과 한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끝나고 주선자에게 결과를 전할 때는 상대에 대한 평가를 보태지 않습니다.

"나이 더 들면 아무도 안 만나 준다"

이 말은 걱정보다 겁을 줍니다. 그리고 꽤 잘 먹힙니다. 마흔 중반에 이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런가 싶어 마음이 급해집니다. 부모님 세대에게 혼자 늙는다는 건 큰 불행이었으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진심 어린 경고입니다.

그런데 서두르다 잘못 고른 사람과 사는 일이 혼자 사는 일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이미 겪어 본 사람이 나입니다. "한 번 서둘러 봐서 알아요. 이번엔 천천히 고를게요." 이 말에는 부모님도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지나온 일이 근거이니까요.

"애한테도 아빠가 있어야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듣는 말입니다. 그 말이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나올 때가 특히 문제입니다. 명절에 친척이 아이에게 "엄마한테 새 아빠 만들어 달라고 해"라며 웃으면, 아이는 웃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 집에 뭔가 모자라다는 말로 듣기 때문입니다. 엄마 대신 아빠가 키우는 집이라면 새엄마라는 말로 똑같이 날아옵니다.

이런 말은 그 자리에서 짧게 막아도 됩니다. "저희는 지금 둘이서도 잘 지내요." 집에 와서는 아이에게 따로 말해 줍니다. "아까 그 말은 신경 쓰지 마. 엄마는 우리 둘이 지금 괜찮다고 생각해." 부모의 연애는 어른들이 대신 정해 줄 일이 아니라는 걸 아이가 먼저 알게 해야 합니다.

"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소개를 몇 번 거절하고 나면 이 말이 돌아옵니다. 몇 번 만나 보고 아니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이에 뭘 그렇게 따지냐는 뜻이 섞여 있어서, 듣고 나면 괜히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겪은 사람의 기준은 높아진 게 아니라 구체적이 된 겁니다. 술버릇, 돈 쓰는 방식, 화났을 때의 말투처럼 한 번 살아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을 이제는 처음부터 봅니다. "높아진 게 아니라 뭘 봐야 하는지 알게 된 거야." 이렇게 말하면 듣는 쪽도 더는 웃어넘기지 못합니다.

내 속도를 남에게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

소개를 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왜 아직인지 이해시키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혼한 지 얼마나 됐는지, 아이가 몇 살인지, 마음이 어디쯤인지는 저마다 다르고, 그 셈은 나만 할 수 있습니다. 설명할수록 상대는 그 설명을 평가하고, 평가를 들으면 또 흔들립니다.

한 가지 정직하게 들여다볼 것은 있습니다. 그 말들이 유난히 버거운 이유가, 실은 나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겁이 나서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남이 내 마음을 먼저 말해 버리면 괜히 반발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남이 고른 사람 말고 내가 고른 방식으로, 내가 정한 때에 시작하면 됩니다.

다음 명절에 같은 말을 또 듣는다면 이렇게 답해 보면 어떨까요. "제가 고르는 사람이 제일 마음에 드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웃으면서 하는 거절이고 문도 닫지 않는 대답이라, 듣는 쪽도 더 조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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