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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데이트

종업원에게 하던 그 말투

나에게는 다정한데 직원에게는 차가운 사람. 주차장, 식당, 계산대, 택시에서 그 사람이 지나치는 얼굴들이 나중의 나를 미리 보여 줍니다.

종업원에게 하던 그 말투AI 모델 사진

"이거 내가 시킨 거 아닌데요. 다시 해 와요."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람은 직원 쪽을 보지도 않고 말했고, 접시를 손등으로 밀었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접시를 들고 가자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다시 웃었습니다. 방금까지 다정하던 그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따라 웃었는데 물컵을 쥔 손이 조금 차가워졌습니다.

집에 와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말투를 쓰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릴까. 답은 단순합니다. 지금 나는 그 사람이 잘 보이고 싶은 상대이고, 그 직원은 아닙니다. 말투는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 앞에서 제 모양을 드러냅니다.

지난 결혼에서 이미 들었던 말투

이혼한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애할 때 그 사람이 식당 직원에게 툭툭 던지던 말을 성격이 급해서 그렇다고 넘겼다고. 결혼하고 몇 해 지나 그 말투가 고스란히 자기에게 왔다고. 가족이 된다는 건 그 사람에게 더는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장면을 그냥 넘기지 않아도 됩니다. 의심이 많아진 게 아니라 볼 줄 알게 된 것입니다. 데이트 한 번에도 그 사람은 여러 사람을 지나칩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의 얼굴을 하나씩 봅니다.

주차장 입구에서

첫 장면은 대개 차에서 시작합니다. 자리가 없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 대리주차 직원에게 열쇠를 건넬 때. 창문을 내리고 "자리 없어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고, 창문이 내려가자마자 "아까 전화로는 된다면서요"부터 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주차를 못 한 건 같습니다. 다른 건 그 짜증을 누구에게 내느냐입니다. 안내하는 직원은 없는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

모든 게 순조로울 때는 누구나 친절합니다. 사람을 보려면 일이 꼬인 순간을 봐야 합니다. 주문이 잘못 들어갔거나 음식이 한참 늦게 나왔을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저희가 이걸 시켰는데 다른 게 나온 것 같아요"라고 일어난 일만 말하는 사람이 있고, 한숨부터 쉬고 "여기 원래 이래요?"를 얹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쪽 사람은 나와 일이 꼬였을 때도 비슷하게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수를 짚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수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꼭 하나 보태는 버릇은 상대만 바뀌어 되풀이됩니다. 그 상대가 언젠가 내가 됩니다.

계산대와 진동벨

더 작은 장면도 있습니다. 카페에서 진동벨이 울려 음료를 받으러 갈 때 고맙다는 말을 하는지. 계산대에 카드를 던지듯 놓는지 손으로 건네는지. 포인트 적립을 묻는 직원에게 휴대폰만 보며 고개를 젓는지. 하나하나는 따질 거리도 못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한 사람이 남을 대하는 기본값입니다.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신경 쓰지 않을 때 나오는 모습입니다.

가게를 하거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해 본 사람은 이 장면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봅니다. 그 자리에 서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직원을 낮춰 보는 말투는 곧 나를 낮춰 보는 말투로 들립니다.

택시 뒷자리의 이십 분

데이트가 끝나고 택시를 잡거나 대리운전을 부르면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기사가 길을 한 번 잘못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행선지를 반말로 던지는지. 내리면서 수고하셨다는 말을 하는지. 좁은 차 안에서는 말투가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바래다주는 길에 같이 탔다면 그 이십 분이 식당의 두 시간보다 많은 것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나를 향한 작은 무례도 같은 줄에

직원을 대하는 말투와 한 줄로 이어진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는 작은 무례입니다. 메뉴를 묻지도 않고 둘 몫을 시켜 버리는 것, 내가 말하는 중에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는 것, 내가 고른 와인을 두고 "이건 좀 싼 맛이네" 하고 웃는 것. 초반에는 이런 것이 무례로 보이지 않습니다. 리드하는 사람, 솔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장면들을 직원 앞에서의 말투와 나란히 놓아 보면 그림이 맞춰집니다. 상대의 자리를 가볍게 여기는 습관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직원에게, 다음에는 나에게 조금씩 옮겨 옵니다.

유난히 친절한 것도 신호일 때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직원에게 큰 소리로 농담을 걸고, 팁을 주며 내 쪽을 힐끗 보고, 사장을 불러 단골이라며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 친절이라기보다 나에게 보여 주는 공연에 가깝습니다. 공연은 관객이 사라지면 끝납니다. 몸에 밴 예의는 조용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되 누가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마주 앉은 사람이 직원에게 무례하게 굴 때 같이 웃어 주면 그 무례의 한편이 됩니다. 그렇다고 첫 만남에서 훈계를 할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직원에게 내가 따로 한마디를 건넵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주세요."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한마디로 자기 말투를 돌아봅니다.

한 번 본 장면으로 사람을 다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날 유난히 지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같은 장면이 두 번째 만남에서도 나온다면 그때는 우연이 아닙니다. 나에게 다정하다는 이유로 그 장면을 지우지 않는 것, 지난번에 하지 못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거울을 이쪽으로 돌려 봅니다. 오늘 주차장과 계산대와 택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맞은편 사람도 그 장면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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