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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데이트

잘 놀고 들어온 밤이 더 허전한 이유

즐거웠는데 현관문을 닫는 순간 무언가가 쑥 빠져나갑니다. 좋은 데이트 뒤에 오는 허전함의 정체와, 그 밤을 무사히 지나는 요령.

잘 놀고 들어온 밤이 더 허전한 이유AI 모델 사진

솔직히 오늘은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고, 그 사람은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었고, 헤어질 때 다음 주 약속까지 잡았습니다. 그런데 현관 불을 켜고 신발을 벗는 순간 무언가가 쑥 빠져나갑니다. 기분 나쁜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울고 싶습니다. 즐거웠던 만큼 집이 더 조용합니다.

이 허전함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사실은 별로였나, 아직 연애할 때가 아닌가. 대개는 둘 다 아닙니다. 좋은 저녁 뒤의 허전함에는 꽤 분명한 까닭이 있고, 그 밤을 지나는 요령도 있습니다.

돌아서는 첫 오 분

허전함은 집보다 먼저 옵니다. 그 사람이 탄 택시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혼자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몇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 쏠려 있던 마음이 갑자기 갈 곳을 잃습니다. 긴장도 함께 풀립니다. 잘 보이려고, 말을 고르려고,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 어디까지 말할지 재느라 생각보다 많은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힘이 빠져나간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래 달리고 나서 다리가 풀리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있다면 아이는 자고 있거나 그날따라 전 배우자 집에 가 있습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원래 혼자인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쪽이든 방금 전의 식당과 지금의 거실은 온도가 너무 다릅니다.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곳에서 냉장고 소리만 나는 곳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이때 알게 됩니다. 오늘 좋았던 게 그 사람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던 두 시간, 둘이 같은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순간, 길을 건널 때 옆에 누가 있던 감각. 결혼 생활에서 좋았던 부분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오늘 그걸 잠깐 돌려받았고, 문을 닫으며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허전함은 오늘이 나빴다는 뜻이 아니라 오늘이 무엇을 건드렸는지 알려 주는 표시입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집이라면 허전함에 미안함이 한 겹 더 얹힙니다. 아이 방문을 살짝 열어 이불을 덮어 주다가, 나는 오늘 웃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아이가 다른 부모 집에 간 날이라면 어질러진 아이 방이 그대로 비어 있습니다. 즐거운 저녁을 보낸 것이 아이를 두고 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 미안함은 오늘 밤 풀 일이 아닙니다. 내일 아침 아이에게 조금 더 다정하면 됩니다.

샤워기 아래에서 되감는 대화

씻으면서 오늘 한 말을 하나씩 되감습니다. 그 농담은 괜찮았나, 전 남편 이야기는 괜히 꺼냈나, 그 사람이 잠깐 말이 없던 건 내 말 때문이었나. 즐거웠던 장면보다 걸리는 장면이 더 오래 재생됩니다. 머리는 원래 위태로웠던 순간을 더 꼼꼼히 붙잡아 두도록 생겼습니다.

되감기가 멈추지 않으면 종이를 꺼냅니다. 오늘 좋았던 장면 세 개를 적습니다. 그 사람이 웃었던 대목, 내가 편했던 순간, 다음에 물어보고 싶은 것. 걸리는 장면도 하나쯤 적어도 됩니다. 적어 두면 머릿속에서 같은 화면이 반복되는 일이 줄어듭니다.

휴대폰을 몇 번째 뒤집고 있다면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가 왔고 답을 했습니다. 그 뒤로 대화창은 조용합니다. 그런데 손이 자꾸 휴대폰으로 갑니다. 혹시 한마디 더 보내 줄까, 오늘 어땠는지 한 줄 남겨 줄까. 기다림은 허전함을 키웁니다.

이 밤에 피할 일이 하나 있다면 긴 메시지입니다. 오늘 너무 좋았다고, 오랜만에 이런 기분이 들었다고, 실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허전한 밤에 쓰는 글은 길어지고 무거워집니다. 아침에 다시 읽으면 대개 지우고 싶어집니다. 답장은 "오늘 즐거웠어요. 푹 쉬어요"에서 멈추고, 휴대폰은 침대에서 먼 곳에 꽂아 둡니다.

새벽에 불쑥 떠오르는 얼굴

잠이 안 오는 새벽, 떠오르는 사람이 오늘 만난 사람이 아니라 전 배우자일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와서 왜 하필 그 얼굴인가. 미련이라기보다 누군가와 처음 저녁을 먹던 기억이 그 사람과의 기억뿐이라서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설렜던 내가 같이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 기억은 쫓아낼수록 또렷해집니다. 그냥 둡니다. 그 시절의 나도 이런 밤을 보냈구나 하고 흘려보냅니다. 그 얼굴이 아침까지 머무는 일은 드뭅니다.

나가기 전에 집을 데워 두는 사람들

이런 밤을 몇 번 겪은 사람들은 요령이 생깁니다. 데이트가 있는 날은 나가기 전에 설거지를 끝내 둡니다. 이불을 새로 빨아 두고, 거실 스탠드 하나를 켜 둔 채 나갑니다. 돌아와서 마실 보리차를 미리 끓여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냉장고 맥주에 손이 가는 밤이라면 한 캔에서 멈추고, 두 번째 캔 대신 따뜻한 컵을 쥡니다. 돌아왔을 때 나를 맞아 줄 무언가를 미리 마련해 두는 일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불 꺼진 집에 들어설 때와는 숨이 다르게 쉬어집니다.

다음 날 아침에 보이는 것

대부분의 허전함은 자고 나면 반쯤 줄어 있습니다. 아침에 어젯밤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허전함이 걷힌 뒤에도 그 사람이 궁금하다면 좋은 신호입니다. 아침에도 마음이 무겁고 다음 약속이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그 무거움은 들여다볼 만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좋은 저녁 뒤의 허전함은 몇 번 되풀이되면서 조금씩 옅어집니다. 혼자인 집으로 돌아오는 일에 몸이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보낸 좋은 시간이 집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날이 옵니다. 그 사람이 궁금한 마음이 아침까지 남아 있다면, 그때 먼저 안부를 보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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