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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했다는 소식이 돌고 나서 걸려 온 전화들

오랜만에 연락한 동창의 좋은 정보, 같이 가게를 하자는 지인, 두 달 만에 합치자는 연인. 위로처럼 다가오는 제안을 가려내는 법을 담았습니다.

이혼했다는 소식이 돌고 나서 걸려 온 전화들AI 모델 사진

이혼 소식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퍼집니다. 서류를 정리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름들이 휴대폰에 뜹니다. 대부분은 위로입니다. 힘들었겠다, 밥 한번 먹자. 그런데 그중 몇 통은 위로로 시작해서 제안으로 끝납니다. 그 몇 통에는 닮은 데가 있습니다.

십 년 만에 연락한 동창의 좋은 정보

밥을 먹다가 동창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이번에 목돈 좀 생겼다며. 그거 통장에 넣어 두면 녹아.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들어 보면 매달 몇 퍼센트씩 수익이 나는 곳이고, 아는 사람만 들어가는 곳이고, 자기도 넣어서 벌었다고 합니다. 오랜 친구의 얼굴이라 의심하는 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원금이 안전하다면서 은행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곳은 그 자체가 경고입니다. 친구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친구 역시 그 구조 안에서 다음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 처지일 때가 많습니다.

같이 가게 하나 하자는 사람

동업 제안은 더 그럴듯합니다. 너는 돈을 대고 나는 몸으로 뛰겠다, 혼자 살 길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 앞날이 막막한 사람에게 이 말은 계획처럼 들립니다. 문제는 돈을 대는 사람과 가게를 쥐는 사람이 다를 때 생깁니다. 명의가 누구 앞으로 되는지, 장부를 누가 보는지, 잘 안 됐을 때 무엇이 남는지 문서로 정하지 않은 동업에서는 대개 돈을 낸 쪽이 잃습니다. 가게 자리를 보러 가자는 첫날부터 계약금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날은 구경만 하고 돌아옵니다.

가족이라서 더 거절하기 힘든 부탁

가장 곤란한 전화는 가족에게서 옵니다. 너 이번에 좀 받았다며, 형 가게가 요즘 어려운데. 이혼할 때 편들어 주고 아이를 봐 준 사람들이라 빚진 마음까지 겹칩니다. 거절하면 정 없는 사람이 되고, 들어주면 앞으로의 생활이 흔들립니다.

이때 도움과 돈을 나눠서 생각합니다. 그동안 받은 도움은 시간과 마음으로 갚을 수 있고, 꼭 지금의 목돈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돕고 싶다면 잃어도 내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금액까지만, 처음부터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고 마음먹은 만큼만 건넵니다.

두 달 만에 합치자는 연인

새로 만난 사람이 유난히 빨리 같이 살자고 할 때가 있습니다. 둘이 따로 월세 내는 게 아깝다고, 어차피 결혼할 사이라고. 정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 것은 그 사람의 집입니다. 지금 살 곳이 마땅치 않거나, 계약이 곧 끝나거나, 생활비가 빠듯한 사람이 내 집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그 서두름의 이유가 사랑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오면 아이 방은 어떻게 되는지, 아이에게는 뭐라고 말할지 묻지도 않고 이삿날부터 잡으려 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살림을 합치면 돈이 섞입니다. 생활비, 차, 아이 학원비까지. 섞인 돈은 헤어질 때 가장 풀기 어렵습니다. 같이 살자는 말이 나오면 그 사람의 형편부터 솔직하게 묻습니다. 대답을 피한다면 그것도 대답입니다.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오는가

이혼 직후의 사람은 이런 접근에 약합니다. 몇 달 동안 서류와 다툼에 시달리느라 판단할 힘이 바닥나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산다는 걸 빨리 보여 주고 싶고, 혼자 늙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손에 쥔 돈을 얼른 불려 두고 싶습니다. 이혼으로 깎인 자존심을 알아주는 말에도 약해집니다. 너 정도면 이제 잘될 일만 남았다는 말 뒤에 제안이 붙으면, 그 제안까지 칭찬처럼 들립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은 이 조급함을 압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번 달까지만, 자리가 얼마 안 남았어.

이혼 뒤 일 년은 큰돈을 묶어 둡니다

스스로 정해 둔 규칙이 하나 있으면 거절이 쉬워집니다. 이혼하고 일 년 동안은 큰돈이 드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재산 분할로 받은 돈은 내 이름의 예금처럼 원금이 지켜지는 곳에 넣어 둡니다. 집을 사거나 가게를 차리는 일도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일 년 동안 놓치는 기회보다 막아 내는 손해가 훨씬 큽니다.

권유받은 곳이 궁금하다면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금융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에서 정식으로 등록된 금융회사인지 조회해 볼 수 있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곳이라면 더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서류를 남에게 보여 줘도 되느냐고 묻기

좋은 제안인지 모르겠다면 한마디만 해 봅니다. "자료 있으면 보내 줘. 아는 사람한테 한번 보여 주고 말할게." 제대로 된 투자나 사업이라면 남이 본다고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이 말에 표정이 굳거나, 그 사람은 잘 모른다고 깎아내리거나, 오늘 정해야 한다고 재촉한다면 더 들어 볼 까닭이 없습니다.

보여 줄 사람은 그 돈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형제나 오래된 친구, 거래하는 은행의 창구 직원도 괜찮습니다.

이미 돈이 건너갔다면

송금했다면 바로 내 은행에 연락해 사기가 의심된다고 알리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금융감독원 1332에서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약서나 차용증 없이 지인에게 건넨 돈이라면 대한법률구조공단 132에서 돌려받을 방법을 묻습니다. 주고받은 메시지와 이체 내역은 하나도 지우지 않습니다.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혼한 데다 돈까지 잃었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그 침묵이 다음 피해를 부릅니다. 잃은 돈을 되찾아 주겠다며 또 다른 사람이 연락해 오는 일도 있습니다.

이혼 뒤 걸려 오는 전화를 다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정말 밥 한번 먹자는 전화입니다. 다만 밥값을 계산하기도 전에 숫자가 나오는 대화라면, 그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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