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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가격을 검색해 본 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서 너무 비싼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마운데 숨이 막히는 그 마음의 정체와 돌려주는 말, 아이 몫으로 온 선물까지 짚어 봅니다.

선물 가격을 검색해 본 밤AI 모델 사진

가격을 찾아본 건 집에 와서였습니다. 상자에 적힌 이름을 검색창에 쳐 보고, 숫자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엎어 놓았습니다. 만난 지 한 달, 네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생일도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다 생각나서 샀다고 했습니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쓰다 지우기를 몇 번. 기뻐야 할 것 같은데 마음 한쪽이 무겁습니다. 이 무게는 이상한 게 아닙니다.

고마운데 왜 숨이 막힐까

선물을 받으면 사람은 셈을 시작합니다. 이만큼 받았으니 이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셈입니다. 받은 것이 내 형편으로는 갚을 수 없는 크기라면 셈이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만남에서 내가 밥을 사도, 작은 선물을 건네도 저울은 기운 채로 있습니다. 그 기울기가 빚진 느낌입니다. 그날 밤 답례로 무엇을 사야 하나 검색창을 다시 여는 나를 보면, 선물을 받은 게 아니라 숙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혼을 겪은 사람에게는 이 느낌이 더 날카롭습니다. 결혼 생활 동안 돈을 더 버는 쪽의 목소리가 컸던 기억, 생활비를 받아 쓰며 눈치를 봐야 했던 기억이 있다면 비싼 선물은 고마움보다 그때의 불편함을 먼저 불러옵니다.

선물이 관계의 속도를 정할 때

초반의 큰 선물은 관계를 앞당깁니다. 받은 쪽은 아직 이 사람을 잘 모르는데도 쉽게 거리를 두지 못합니다.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연락을 줄이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 만나고 싶어도 그 선물이 떠올라 말을 미룹니다.

대부분의 선물에는 나쁜 뜻이 없습니다. 다만 뜻과 상관없이 비싼 선물은 받은 사람의 선택지를 좁힙니다. 그래서 받기 전과 받은 뒤의 내 마음을 견주어 봅니다. 그 사람에게 아니라고 말하기가 조금이라도 어려워졌다면 선물이 이미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몸에 지니는 선물이 하는 말

목걸이나 반지, 시계처럼 몸에 지니는 선물은 값과 별개로 무게가 다릅니다. 하고 나오면 그 사람이 알아보고, 안 하고 나오면 왜 안 했느냐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받은 커플링은 아직 정하지 않은 관계에 이름을 먼저 붙여 버립니다.

이런 선물이 부담스럽다면 받을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해도 됩니다. "예쁜데, 이런 건 우리가 좀 더 서로를 알게 된 뒤에 받고 싶어요."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시점은 두 사람이 함께 정하는 것이지 한쪽이 선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앞으로 온 선물

더 곤란한 건 아이 몫입니다. 아이를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최신 게임기나 휴대폰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고 나는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아이가 따로 사는 부모 집에 가서 이걸 누가 사 줬다고 말할지도 걱정입니다.

아이에게 오는 선물은 내가 먼저 걸러도 됩니다. "마음은 고마워요. 그런데 아이한테는 아직 당신을 소개하지 않았어요. 아이 선물은 나중에, 서로 얼굴을 알게 된 다음에 받을게요." 아이를 통해 마음을 사려던 선물이라면 이 말에 서운해할 것이고, 정말 아이를 생각한 선물이라면 이 순서를 이해합니다.

이미 아이 손에 들어갔다면 말없이 빼앗지 않고 아이와 이야기합니다. 아저씨가 고마운 마음으로 준 건데 엄마가 생각해 보니 아직은 이른 것 같다고, 그래서 돌려드리자고. 아이는 서운해하겠지만 이유를 들은 서운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받지 않겠다는 말은 그 자리에서

돌려줄 생각이라면 빠를수록 쉽습니다. 집에 가져가 상자를 열고 며칠이 지나면 돌려주는 일이 훨씬 무거워집니다. 받는 순간 크기가 짐작된다면 그 자리에서 말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이건 제가 받기엔 너무 커요. 우리가 아직 알아 가는 중이라 이런 선물보다 천천히 가고 싶어요." 거절의 이유를 선물이 아니라 관계의 속도에 두면 상대가 덜 무안해합니다.

이미 받아 왔다면 메시지보다 다음 만남에서 직접 돌려줍니다. 포장을 그대로 두었다면 더 좋습니다. 같은 말에 한 문장만 더합니다. "집에 가서 생각해 봤는데,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돌려줬을 때 보이는 얼굴

선물을 사양했을 때 그럼 다음엔 작은 걸로 하겠다며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불편을 알아들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얼굴이 굳고, 성의를 무시하느냐고 따지고, 그 뒤로 연락의 온도가 확 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선물은 마음보다 거래에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너무 빠른 애정과 큰 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거절에 화를 낸다면 그 다정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 걸음 물러서서 봅니다.

헤어진 뒤에 남은 상자

관계가 끝난 뒤 그 선물이 집에 남아 있으면 볼 때마다 마음이 걸립니다. 돌려줄지 말지는 사람마다 답이 다르지만, 값이 큰 물건이라면 돌려주는 쪽이 뒤가 깨끗합니다. 직접 만나기 불편하다면 택배로 보내고 보낸 기록을 남겨 둡니다. 반대로 상대가 줬던 선물을 빌미로 계속 연락하거나 만나자고 한다면, 물건은 보내 주되 그 연락에는 더 답하지 않습니다.

선물하는 쪽의 사정

주는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습니다.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툰 사람, 지난 결혼에서 잘해 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은 사람은 선물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합니다. 혼자 지내며 쓸 데 없던 돈이 쌓여 있으면 크게 쓰는 게 가장 쉬운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주는 쪽이라면 한 번 물어봅니다. "혹시 부담됐어요?" 그리고 그 대답을 믿습니다. 상대가 정말 기뻐하는 건 가격표보다 지난번에 지나가듯 한 말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일 때가 많습니다. 사양당한 무안함이 오래 남는다면 이것만 기억해 둡니다. 그 사람이 거절한 건 선물이지 내 마음이 아닙니다.

선물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면 하나만 물어보면 됩니다. 이걸 받고 나서도 다음 만남에서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받아도 되는 선물이고, 그 말이 목에 걸릴 것 같다면 돌려주는 편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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