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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아이가 그 사람을 너무 빨리 좋아할 때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 아이가 그 사람을 기다리고 매달립니다. 반가운 마음 뒤에 숨은 걱정을 짚고, 아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어른이 속도를 늦추는 법을 담았습니다.

아이가 그 사람을 너무 빨리 좋아할 때AI 모델 사진

유치원 가방에서 그림 한 장이 나옵니다.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 아래 사람이 셋입니다. 나, 아이, 그리고 안경을 쓴 키 큰 사람. 그 사람을 만난 건 세 번뿐입니다. 공원에서 한 번, 키즈카페에서 한 번, 짜장면집에서 한 번. 그런데 아이는 아침마다 묻습니다. 삼촌 오늘 와?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싫어하면 어쩌나 그렇게 걱정했는데. 그런데 그림을 냉장고에 붙이다가 손이 멈춥니다. 이렇게 빨라도 괜찮은 걸까.

아이가 문을 빨리 여는 까닭

아이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가장 흔한 것은 빈자리입니다. 따로 사는 부모를 자주 못 보는 아이, 연락이 아예 끊긴 아이, 사별로 한쪽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는 그 자리에 들어올 어른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빠와 공을 차는 친구를 부러워하던 아이가 공을 같이 차 주는 어른을 만나면 마음을 통째로 내어 줍니다.

엄마나 아빠가 웃는 얼굴이 좋아서 따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는 날 집 안 공기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아이는 압니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낯을 안 가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아이의 마음은 진짜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반가운 마음부터 들여다봅니다

아이가 연인을 따르면 부모는 안도합니다. 그 안도 속에는 바람이 섞여 있습니다. 다시 온전한 가족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 이혼으로 아이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입니다. 그 바람이 크면 늦춰야 할 순간에 오히려 등을 떠밀게 됩니다. 주말마다 셋이 나가고,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로 약속을 늘립니다. 솔직히 아이가 좋아하니 내 연애에 핑계가 생긴 것 같아 편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서두르면 어른이 천천히 가야 합니다. 이 관계가 어디까지 갈지 아직 어른도 모르니까요.

연인도 들뜹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환영받으면 연인도 마음이 붕 뜹니다. 특히 아이를 키워 본 적 없는 사람은 자기에게 매달리는 아이 앞에서 기쁘면서도 당황합니다. 그래서 약속을 쉽게 합니다. 다음엔 놀이공원 가자, 크리스마스에 선물 사 줄게. 어른에게는 인사말이지만 아이는 날짜를 셉니다.

연인에게 미리 부탁해 둡니다. "애가 좋아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애 앞에서 다음 약속은 하지 말아 줘. 못 지키면 애가 오래 기억해." 이 부탁을 서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도 지켜볼 만합니다.

속도는 어른이 정합니다

만나는 간격을 지킵니다. 아이가 조른다고 매주 만나게 하지 않습니다. 두세 주에 한 번쯤으로 리듬을 정해 두면 아이도 그 리듬에 익숙해집니다.

집 밖에서 짧게.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자고 가는 일은 아직 이릅니다. 아이에게 집은 식구의 공간이라,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은 곧 식구라고 받아들입니다.

둘만 두지 않습니다. 아이와 연인이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관계가 한참 단단해진 뒤로 미룹니다. 부모가 늘 곁에 있어야 아이도 이 사람이 엄마나 아빠 옆의 손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선물은 작게. 만날 때마다 선물이 있으면 아이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건지 선물을 기다리는 건지 헷갈립니다.

나이에 따라 매달리는 모양이 다릅니다

어린아이는 몸으로 매달립니다. 헤어질 때 다리를 붙잡고 울고, 그 사람이 재워 줘야 잔다고 떼를 씁니다. 이럴 때 아이 바람대로 다 들어주면 다음번에는 더 큰 것을 바랍니다. 잠자리는 엄마나 아빠의 몫으로 남겨 두고, 헤어지는 인사는 짧게 끝냅니다.

초등학생쯤 되면 말로 매달립니다. 친구들에게 그 사람 자랑을 하고, 학교 행사에 와 달라고 하고, 휴대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합니다. 아이와 연인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아직 열어 두지 않습니다. 어른을 거치지 않는 연락이 쌓이면 관계가 어른 손을 떠나 버립니다. 사춘기 아이가 빨리 마음을 여는 경우는 드문데, 그런 아이는 부모에게 못 하는 고민을 그 사람에게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연인에게는 들은 이야기 가운데 아이의 안전에 관한 것은 꼭 부모에게 전해 달라고 미리 말해 둡니다.

아빠라고 불러 버린 날

어느 날 아이가 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실수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일부러 떠보기도 합니다. 이때 크게 놀라거나 나무라면 아이는 자기 마음이 잘못됐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조용히 말해 줍니다. "삼촌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그 마음은 엄마도 좋아. 그래도 삼촌은 삼촌이라고 부르자. 삼촌은 삼촌 집이 따로 있는 엄마 친구야."

따로 사는 부모가 있는 아이라면 이 말이 더 필요합니다. 아이가 그쪽 집에 가서 새아빠가 생겼다고 말하는 순간, 어른들 사이의 일이 아이 입을 통해 엉뚱하게 번집니다.

아빠가 만나는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와 떨어져 사는 아이라면 그 한마디에 그리움과 원망이 함께 실려 있을 수 있습니다. 호칭을 고쳐 주기 전에 "엄마 보고 싶었구나" 하고 먼저 그 마음을 알아주는 편이 낫습니다.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고

말하기 싫지만 생각해 둘 일이 있습니다. 이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마음을 많이 줄수록 그때의 상처도 큽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기쁨이 그 사람 한 명에게 몽땅 걸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삼촌이 와서 즐거운 날만큼 엄마와 둘이 즐거운 날도 꾸준히 있어야 합니다.

"삼촌은 어디 안 가"처럼 어른도 장담 못 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엄마는 어디 안 가"는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아이에게 변하지 않는 쪽은 그쪽입니다.

냉장고의 그림은 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다음 그림에 누가 그려지든, 그 한가운데에 아이와 내가 서 있도록 지키는 일은 어른이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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