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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새아빠를 좋아해도 되냐고 묻는 아이

새 어른이 좋아질수록 따로 사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지는 아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을 함께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을 아이에게 건네는 말을 찾아봅니다.

새아빠를 좋아해도 되냐고 묻는 아이AI 모델 사진

불을 끄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부릅니다. 엄마, 근데. 한참 이불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묻습니다. 나 아저씨 좋아해도 돼? 아빠가 알면 슬퍼할까? 문고리를 잡은 채 그 자리에 서 버립니다. 아이가 그 사람을 싫어할까 봐만 걱정했지, 좋아하는 것 때문에 아이가 괴로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이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은 사랑이 나눌수록 늘어난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는 아직 모릅니다. 아이에게 마음은 정해진 양이 있어서, 새 사람에게 조금 주면 엄마나 아빠의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새 어른이 좋아질수록 따로 사는 부모에게 미안해집니다. 즐거웠던 하루가 아이에게는 몰래 저지른 잘못이 됩니다.

이 마음은 새 사람이 잘해 줄수록 커지기도 합니다. 싫은 사람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는데, 좋은 사람이라서 더 곤란한 겁니다. 아이가 새 어른에게 차갑게 군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단정하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말로 묻지 않는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

잠들기 전에 이렇게 물어 주는 아이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은 행동으로 드러냅니다.

즐거운 날 뒤의 냉랭함. 아저씨와 신나게 놀고 온 다음 날 갑자기 말을 안 하거나 짜증을 냅니다. 어제 즐거웠던 자신을 벌주는 중입니다.

선물 숨기기. 새 어른이 사 준 옷은 따로 사는 아빠를 만나러 갈 때 절대 입지 않습니다. 그쪽에 가면 이 집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뭅니다.

다른 쪽 부모 치켜세우기. "우리 아빠는 이것도 잘하는데." 새 어른 앞에서 따로 사는 부모 자랑이 부쩍 늘어납니다. 내 진짜 편은 그쪽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입니다.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 단둘이 있을 때는 잘 따르다가 친척이나 따로 사는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는 새 어른을 모르는 척합니다.

대답은 짧고 분명하게

아이가 물어 왔다면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듣고 싶은 것은 허락입니다. "좋아해도 돼.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아빠를 덜 좋아하는 게 아니야. 아빠는 아빠고, 아저씨는 아저씨야."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붙입니다. "네가 아빠를 계속 좋아하는 거, 엄마는 좋아." 따로 사는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사는 부모가 먼저 응원해 주면, 아이는 그제야 새 사람에게 마음을 줄 자리를 찾습니다. 이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모양을 바꿔 여러 번 해 주어야 합니다.

가장 큰 허락은 다른 쪽 부모에게서 옵니다

아이에게 가장 무겁게 들리는 목소리는 따로 사는 부모의 목소리입니다. 그쪽에서 "아저씨랑 재밌게 지내" 한마디만 해 줘도 아이 어깨에서 짐이 내려갑니다. 반대로 "새아빠 생겼다며, 좋겠네" 같은 말 한마디가 아이를 몇 달씩 얼어붙게 만들기도 합니다.

전 배우자와 아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부탁해 볼 만합니다. "애가 아저씨를 좋아하면 당신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아. 당신이 괜찮다고 한마디 해 주면 애가 많이 편해질 거야." 그런 부탁을 할 수 없는 사이라면 적어도 내 집에서는 아이가 그쪽 부모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되는 분위기를 지켜 줍니다.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은 넣어 둡니다

어른들이 무심코 아이를 저울 위에 세우기도 합니다. "여기가 더 편하지?" "아저씨가 아빠보다 잘 놀아 주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어도 아이에게는 한쪽을 고르라는 시험입니다. 어느 대답을 해도 누군가를 배신하게 되니 아이는 웃고 넘기면서 속으로 움츠러듭니다.

두 집을 견주는 말은 칭찬의 모양이라도 하지 않습니다. 따로 사는 부모 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는 "재밌었어?" 한마디면 됩니다. 거기서 무엇을 먹었는지, 그쪽 집이 어땠는지 캐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두 집 사이를 훨씬 가볍게 오갑니다.

엄마나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집이라면

사별한 집의 아이는 미안함이 더 깊습니다. 새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를 잊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 부모는 서운하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아이가 대신 그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기억할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기일에 함께 찾아가는 곳, 아빠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는 날, 책상 위의 사진 한 장. "아빠를 기억하는 일이랑 아저씨를 좋아하는 일은 같이 할 수 있어." 새 사람이 그 기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의 경계는 훨씬 빨리 풀립니다.

새 어른이 해 줄 수 있는 말

새 연인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선을 그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 아빠는 한 사람뿐이야. 나는 그 자리를 가져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너랑 친해지고 싶은 어른이야." 이 말은 아이에게 겨룰 상대가 없다는 안심을 줍니다. 따로 사는 부모의 좋은 점을 아이 앞에서 가끔 말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아이는 새 어른이 자기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 마음을 놓습니다.

어버이날 카드나 가족 그림을 기대하지 않는 것도 새 어른의 몫입니다. 아이가 거기에 자기를 그리지 않았다고 서운한 티를 내면, 아이는 다음부터 마음을 감추는 법을 더 배웁니다.

아이가 고른 거리

허락의 말을 건넸다고 아이가 금세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몇 해가 걸리기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며 다시 멀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고른 거리를 그대로 두는 것도 허락의 일부입니다. 손을 잡지는 않아도 같은 식탁에서 웃는 날이 늘고 있다면, 아이는 아이 나름의 속도로 이미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아이가 그 질문을 입 밖에 냈다는 것은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엄마에게 기대 보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또 물어 오면 같은 대답을 조금 다른 말로 다시 해 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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