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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혼자 키우는 집에서 내가 앓아누운 밤

아파서 서러운 것보다 아파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더 무섭습니다. 한부모가 앓아누운 새벽부터 회복한 뒤까지 챙길 것을 순서대로 담았습니다.

혼자 키우는 집에서 내가 앓아누운 밤AI 모델 사진

새벽 세 시, 이가 덜덜 떨려서 깼습니다. 체온계 숫자는 39도를 넘었습니다. 옆방에서는 아이가 자고 있고, 일곱 시 반에는 깨워서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해열제를 찾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산부터 합니다. 내가 응급실에 가면 아이는 누구랑 있지. 아침은 누가 차리지.

아파서 서러운 것보다, 아파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더 무섭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지나는 밤입니다.

새벽 세 시, 버티는 게 답이 아닐 때

혼자 키우는 부모는 버티는 데 익숙합니다. 아침까지 참았다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병원에 가려 합니다. 그런데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거나, 숨이 차고 가슴이 조이거나, 일어서기 힘들 만큼 어지럽다면 아침을 기다릴 일이 아닙니다. 구급차 소리에 아이가 놀랄 것 같아도, 쓰러진 부모를 아침에 발견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놀랍니다.

응급실까지 갈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으면 119에 전화해 증상을 말하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밤에 문을 연 병원과 약국도 알려 줍니다.

잠든 아이를 깨워야 한다면

아이가 겁을 먹는 건 아픈 부모의 얼굴보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짧게,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아빠가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다녀와야 해. 의사 선생님 만나면 나아질 거야. 그동안 너는 고모랑 있자." 그리고 할 일을 하나 줍니다. 겉옷 입기, 자기 물건 챙기기 같은 일입니다. 손이 바쁘면 마음이 덜 흔들립니다.

큰아이에게 물을 떠다 달라거나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밤의 책임까지 넘기지는 않습니다. 동생을 돌보는 일이 열 살짜리 몫이 되면, 그 아이는 다음부터 부모가 기침만 해도 잠을 설칩니다.

아침 일곱 시, 연락처를 넘기다 멈추는 손

새벽을 넘기면 하루가 남습니다. 등교, 하교 뒤 몇 시간, 저녁밥. 많은 사람이 연락처 목록을 위아래로 넘기다가 멈춥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라기보다 이 시간에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입니다.

그래서 비상 연락망은 아프기 전에 만듭니다. 종이 한 장에 이름 세 개면 됩니다. 새벽에도 전화할 수 있는 사람, 아이를 하루 맡아 줄 수 있는 사람, 학교와 학원에 대신 연락해 줄 사람. 미리 말도 해 둡니다. "내가 갑자기 아프면 너한테 제일 먼저 전화할게. 그날 하루만 애 좀 봐 줄 수 있어?" 한 번 해 둔 부탁은 그날의 전화를 훨씬 쉽게 만듭니다.

아이의 다른 부모에게 거는 전화

따로 사는 아이의 엄마나 아빠에게 연락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일 때가 있습니다. 동시에 가장 하기 싫은 전화입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고, 그쪽에서 양육 문제를 꺼낼까 봐 겁도 납니다.

사이가 아주 나쁘지 않다면 부탁보다 알림에 가깝게 말하는 편이 덜 구겨집니다. "내가 이틀 입원해야 해서 그동안 아이를 봐 줬으면 해. 준비물은 가방에 넣어 뒀어." 아이에게는 낯선 집보다 자기 부모의 집이 덜 불안할 수 있습니다. 폭력이나 위협이 있었던 관계라면 아무리 급해도 이 전화는 걸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종이의 다른 칸을 미리 채워 둡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괜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그 밤을 편하게 잤다면 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의 손을 빌릴 수 있는 곳

가족이 멀리 산다면 공공 돌봄을 알아 둡니다.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는 돌보미가 집으로 와서 아이를 봐 주는 제도이고, 한부모 가정은 이용료를 더 지원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픈 날 처음 알아보면 늦습니다. 가입과 연결에 시간이 걸리니 건강할 때 등록해 두고, 급할 때 쓸 수 있는 돌봄이 동네에 있는지 주민센터나 가족센터에 물어 둡니다.

수술이나 입원처럼 날짜를 아는 일이라면 담임 선생님에게 미리 사정을 알리고, 그동안 아이를 데리러 갈 사람의 이름을 전해 둡니다.

열이 내린 다음 날의 대화

몸이 좀 나으면 그날 일을 아이와 한 번 이야기합니다. 무서웠는지, 뭐가 제일 걱정됐는지 묻습니다. 또 아프면 어떡하냐고 묻는 아이에게는 다시는 안 아프겠다는 약속 대신 계획을 들려줍니다. "아빠가 아프면 고모가 와. 고모가 안 되면 할머니한테 가. 너 혼자 남는 일은 없어."

초등학생이라면 119에 거는 법과 부모 이름, 집 주소를 외워 두게 합니다. 냉장고 문에 연락처 종이를 붙여 두면 아이도 어른도 급할 때 그 종이부터 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아프다고 말해도 될까

연인이 있다면 그 밤에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부담 줄까 봐 망설여지지만 말해도 됩니다. 아프다는 연락에 어떻게 답하는지는 그 사람을 알아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다만 사귄 지 얼마 안 됐다면 아이를 맡기는 일까지 넘기지는 않습니다. 아이에게 그 사람은 아직 낯선 어른일 수 있습니다. 죽 한 그릇을 문 앞에 두고 가는 정도면 충분히 고마운 도움입니다.

내가 없는 날까지 생각이 미칠 때

앓는 밤에는 더 큰 질문이 따라옵니다. 내가 크게 다치거나 오래 누워 있게 되면 아이는 어떻게 되나.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서 대부분 덮어 둡니다. 덮어 둔 걱정은 아플 때마다 다시 올라옵니다.

그러니 한 번은 구체적으로 알아봅니다. 내 보험이 입원과 간병을 어디까지 받쳐 주는지, 아이 통장과 서류가 어디 있는지 아는 어른이 한 명은 있는지. 내가 없을 때 아이를 누가 돌볼지 미리 정해 둘 방법이 궁금하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 132에 상담을 청합니다. 집마다 사정이 달라서 혼자 짐작하는 것보다 묻는 쪽이 빠릅니다.

혼자 키운다는 말은 모든 걸 혼자 감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 곁에 매일 있는 어른이 한 명이라는 뜻이고, 그 한 명이 쓰러져도 손 닿는 곳에 다른 어른이 있으면 됩니다. 오늘 저녁에 할 일은 하나입니다. 종이에 이름 세 개를 적어 냉장고에 붙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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