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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연애

남들은 벌써 다시 만난다는데

비슷한 무렵 이혼한 친구는 새 사람과 찍은 사진을 올리고, 전 배우자의 프로필에도 낯선 얼굴이 생겼습니다. 조급함이 하는 말을 하나씩 따져 봅니다.

남들은 벌써 다시 만난다는데AI 모델 사진

솔직히 축하하는 마음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벌써? 비슷한 무렵 이혼 서류를 냈던 대학 동기가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올렸습니다. 바닷가, 두 사람, 맞춘 듯한 바람막이. 다들 잘됐다고 한마디씩 남기는 사이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괜히 전 배우자의 메신저 프로필까지 눌러 봅니다. 배경 사진에 처음 보는 사람의 어깨가 걸려 있습니다. 슬프다기보다 이상하게 다급해집니다.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이러다 영영 뒤처질 것 같습니다. 이 조급함은 그럴듯한 말을 여러 개 합니다. 그 말들이 맞는지 하나씩 따져 볼 만합니다.

그 사람은 벌써 다 괜찮아졌다는 생각

사진 속 웃는 얼굴은 하루 중 가장 좋은 몇 초입니다. 그 사진을 올린 동기가 지난주에 혼자 술을 마시다 울었는지, 새 연인과 아이 문제로 다투는 중인지는 사진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의 가장 좋은 장면을 내 가장 나쁜 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합니다. 이길 수 없는 비교입니다.

빨리 새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빨리 나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다 나아서 만나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은 채로 혼자를 견디기 힘들어서 만납니다. 밖에서 보면 두 경우는 똑같아 보입니다.

늦으면 괜찮은 사람은 다 짝이 생긴다는 걱정

마흔이 넘으면 이 걱정이 자주 찾아옵니다. 괜찮은 사람은 이미 누가 데려갔고, 남은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혼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세계는 그렇게 닫혀 있지 않습니다. 해마다 새로 혼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빨리 시작했다가 다시 혼자로 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정해진 몇 명이 아닙니다. 나와 맞는 사람은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급할 때 고른 사람과 여유 있을 때 고른 사람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만나도 다른 사람입니다.

전 배우자가 먼저 만나면 내가 진 것 같은 기분

가장 아픈 비교는 이쪽입니다. 그 사람이 먼저 행복해지면 이혼의 잘못이 나에게 있었다는 증명처럼 느껴집니다. 저 사람은 멀쩡한데 문제는 나였구나, 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새 연인이 생겼다는 건 누가 옳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혼자를 못 견디는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냥 때가 맞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혼은 승부가 아니었고, 그 뒤의 연애도 결승선이 있는 경기가 아닙니다. 먼저 도착한다고 받는 상은 없습니다.

아이 입으로 듣는 그 사람의 새 연인

가장 피하기 어려운 소식은 아이를 통해 옵니다.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가 저녁을 먹다 말합니다. 아빠 집에 이모가 왔었어, 같이 놀이공원 갔어. 숟가락을 든 손이 멈추고, 묻고 싶은 게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어떤 사람이야, 자주 와, 너한테 잘해 줘.

그 질문들을 아이에게 쏟지 않는 것이 이 순간 내가 할 일입니다. 아이는 금방 눈치채고, 다음부터는 저쪽 집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됩니다. "재밌었겠네. 놀이공원에서 뭐 탔어?" 아이의 하루에만 대답하고, 내 마음은 아이가 잠든 뒤에 따로 들여다봅니다. 양쪽 집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어야 아이도 덜 지칩니다.

나도 일단 아무나 만나 봐야 한다는 충동

조급함이 가장 위험해지는 곳이 여기입니다. 보여 주려고 시작하는 연애입니다. 프로필 사진을 바꿀 거리가 필요하고, 누가 물으면 나도 만나는 사람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나면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물이 됩니다.

이런 연애는 대개 오래가지 않고, 끝날 때 남는 것은 한 번 더 실패했다는 기분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한 번만 물어봅니다. 만날 사람을 향해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해 있는지.

나만 너무 느리다는 자책

속도는 처지에 따라 다릅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은 저녁 한 번 비우는 것도 큰일입니다. 소송이 길었던 사람은 서류가 끝난 뒤에야 겨우 숨을 쉽니다. 결혼 생활이 이십 년이었다면 이십 년 치의 습관을 내려놓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합니다.

동기와 나는 같은 무렵 이혼했을 뿐 같은 결혼을 끝낸 것이 아닙니다. 출발선이 같았다고 여기니 내가 늦어 보이는 겁니다.

안 보이게 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 안 되는 날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을 줄입니다. 전 배우자의 메신저 프로필은 숨김으로 돌려 둡니다. 차단까지 갈 것 없이 목록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정도면 됩니다. 단체 대화방의 사진 알림을 꺼 두는 것도 생각보다 효과가 큽니다. 보지 않는 동안에는 비교도 쉬어 갑니다.

주변에서 "너는 아직이야?"라고 물어 올 때 쓸 대답도 하나 정해 둡니다. "나는 내 순서대로 가고 있어." 웃으며 말하면 더 캐묻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답이 준비돼 있으면 그 질문이 하루를 흔들지 못합니다.

조급함 속에 들어 있는 것

조급함을 무조건 눌러야 할 감정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안에는 정보가 있습니다. 남의 연애 소식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나도 누군가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남과의 경주에 쓰지 않고 내 쪽으로 돌려 봅니다.

종이 한 장에 적어 보면 도움이 됩니다. 나는 어떤 저녁을 함께 보내고 싶은가, 어떤 사람 옆에서 편했는가, 이번에는 무엇을 서두르지 않고 싶은가. 답이 조금씩 채워질수록 남의 사진은 덜 아프게 보입니다.

남들이 벌써 다시 만난다는 소식은 앞으로도 들려올 겁니다. 그때마다 물어볼 것은 하나입니다. 지금 내가 부러운 건 그 사람일까, 그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저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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