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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아무도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는 생일

축하 문자보다 쿠폰 문자가 먼저 오는 아침. 이혼 후 처음 맞는 내 생일의 허전함과, 그날을 스스로 챙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았습니다.

아무도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는 생일AI 모델 사진

은행과 쇼핑몰과 통신사가 가장 먼저 축하해 줍니다. 생일을 맞아 쿠폰을 드린다는 문자입니다.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는 아직 없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며 휴대폰을 두 번 더 확인하고, 그런 자신이 머쓱해서 화면을 엎어 놓습니다.

이혼 후 처음 맞는 내 생일은 명절이나 결혼기념일과 결이 다른 허전함을 줍니다. 그날은 가족의 날도, 둘의 날도 아닌 내 날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챙기지 않으면 그 빈자리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날 부딪히는 순간은 대개 비슷합니다.

줄어든 축하의 숫자

결혼해 있을 때는 생일에 연락이 많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문자, 처제의 이모티콘, 배우자 쪽 친구들의 인사. 그 연락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사라진 축하의 절반쯤은 원래 내 사람이 아니라 결혼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것이었다는 걸 그날 알게 됩니다.

서운한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남은 축하를 세어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오래된 친구 하나, 회사 동기 하나, 대학 선배 하나. 숫자는 줄었지만 이 사람들은 누구의 배우자여서가 아니라 나여서 연락한 사람들입니다. 그 이름들을 한 번 천천히 읽어 보는 것만으로 아침의 서운함이 조금 다른 모양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온다면

전 배우자에게서 생일 축하 문자가 오기도 합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짧은 인사 한 줄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립니다. 무슨 뜻일까, 답해야 할까.

대부분은 예의 이상의 뜻이 없습니다. 답장은 "고마워요" 한마디면 됩니다. 반대로 아무 연락이 없는 게 서운하다면 그 서운함도 그날 하루의 기분으로 둡니다. 연락이 오고 안 오고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 들면 내 생일이 그 사람의 날이 되어 버립니다.

"남편이 뭐 해 줬어?"라는 질문

회사에서 생일을 챙겨 주는 자리가 오히려 버거운 날도 있습니다. 탕비실에 조각 케이크가 놓이고 노래가 끝나면 누군가 웃으며 묻습니다. 남편이 뭐 해 줬어, 와이프가 미역국은 끓여 줬어? 이혼한 줄 모르는 사람의 악의 없는 질문입니다.

이럴 때 쓸 대답 하나를 미리 정해 둡니다. "이번 생일은 제가 저한테 선물하기로 했어요" 정도면 웃으며 넘어갑니다. 거짓말을 지어낼 필요도, 그 자리에서 사정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준비된 한 문장이 있으면 그 질문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려 있지 않습니다.

아이가 챙기는 생일, 챙기지 못하는 생일

함께 사는 아이가 용돈을 모아 편의점 조각 케이크를 사 오는 날이 있습니다. 삐뚤빼뚤 쓴 카드 한 장에 하루가 다 보상됩니다. 예전보다 작지만 단단한 생일입니다.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의 생일은 다릅니다. 아이가 어리면 혼자서는 엄마 아빠 생일을 챙기지 못합니다. 같이 사는 부모가 오늘 아빠 생일이니 전화해 보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아이의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그게 전 배우자의 무심함인지 아이가 잊은 건지 따지느라 저녁이 무거워집니다. 그럴 바에는 생일 전날 아이에게 먼저 전화해 "내일 아빠 생일인데 노래 불러 줄래?"라고 부탁해도 됩니다. 아이는 부탁받은 일을 신나서 합니다.

미역국을 누가 끓였는지

결혼 생활 내내 남의 생일상만 차리던 사람이 있습니다. 시부모님 생신, 배우자 생일, 아이 생일. 정작 자기 생일에는 아침에 미역국 한 냄비 끓여 두고 아무도 몰라도 넘어갔습니다. 반대로 미역국을 받기만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십몇 년 동안 자기 생일 아침이 어떻게 차려졌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번에는 내가 끓입니다. 국거리 소고기 한 줌과 마른미역, 국간장이면 됩니다. 전날 밤 미역을 불려 두면 아침에 이십 분이면 끝납니다. 처음 끓여 보는 사람이라 맛이 어설퍼도 상관없습니다. 생일 아침에 나를 위해 무언가를 차렸다는 것이 그날의 첫 선물입니다.

밥 사 달라고 먼저 말하기

챙겨 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말하는 편이 훨씬 덜 서운합니다. 친구에게 "나 이번 주 금요일 생일인데 저녁 같이 먹을래?"라고 보내는 일이 처음에는 민망합니다. 생일을 스스로 알리는 게 축하를 조르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받는 쪽은 대개 반깁니다. 이혼한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무슨 말로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던 사람에게 생일은 다시 연락할 좋은 핑계가 됩니다. 말해 주지 않아서 몰랐고, 몰라서 못 챙긴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렇게 마주 앉은 저녁에는 이혼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일은 그러라고 있는 날입니다.

나에게 줄 선물을 미리 정해 두기

스스로 생일 선물을 사는 일도 어색하지만 해 볼 만합니다. 비싼 물건이 아니어도 됩니다. 늘 사고 싶었는데 순서에서 밀리던 것, 예전 같으면 식구들 눈치가 보여 못 샀던 것이면 됩니다. 반차를 내고 평일 오후의 극장에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선물입니다.

퇴근길에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삽니다. 혼자 먹기엔 과하다 싶어도 삽니다. 식탁에 올려 초를 하나만 꽂고 불을 붙이면, 혼자 부르는 생일 노래가 생각만큼 처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소원은 길게 빌어도 됩니다. 들을 사람이 없으니 무엇을 빌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생일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안 상대가 오히려 서운해하는 일이 흔합니다. "크게 뭘 안 해도 돼요. 그날 밥이나 같이 먹어요" 정도면 서로 편합니다.

첫 생일이 허전했다면 다음 생일 계획을 조금 일찍 세워 둡니다. 누구와 밥을 먹을지, 나에게 무엇을 줄지 달력 옆에 적어 둡니다. 챙겨 줄 사람을 기다리는 날에서 내가 챙기는 날로 바꾸는 데는 한두 번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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