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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괜찮은 척에도 퇴근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웃고, 아이 앞에서 더 밝게, 부모님 전화에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괜찮은 척에 지친 사람이 진짜 얼굴로 쉴 자리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괜찮은 척에도 퇴근 시간이 필요합니다AI 모델 사진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끕니다. 바로 내리지 않습니다.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오 분쯤 앉아 있다가, 룸미러로 눈가를 정리하고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사무실 문을 열 때는 웃는 얼굴입니다. 인사도 먼저 합니다. 방금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회의실의 웃는 얼굴

회사에서는 이혼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씁니다. 점심 자리에서 누가 주말에 가족끼리 어디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를 칩니다. 부장이 와이프는 잘 있느냐고 물으면 "네, 잘 지내요" 하고 넘어갑니다. 서류상으로 바뀐 게 많아도 회사에서는 지난달과 같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웃음에는 값이 듭니다. 여덟 시간 동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지키고 나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몸이 녹아내립니다. 일 때문이 아니라 표정을 관리하느라 지친 것입니다. 이 피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남들도 나도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회의 중에 갑자기 목이 메는 날도 있습니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찬물로 눈가를 식힌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루를 넘긴 사람은 퇴근할 무렵이면 남은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 앞에서는 한 번 더 밝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합니다. 아이가 불안해할까 봐 저녁상에서 더 많이 웃고, 숙제를 봐 주며 목소리를 한 톤 올립니다. 아이가 잠든 뒤에야 얼굴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 시간에 혼자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이 개수대에 떨어집니다.

아이에게 전부 숨기는 것이 꼭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의 웃음이 진짜인지 꽤 정확하게 압니다. 진짜 같지 않은 웃음을 보고 자란 아이는 자기도 괜찮은 척하는 법부터 배웁니다. 가끔은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엄마 오늘 좀 슬픈 날이야. 너 때문은 아니고,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아이를 겁먹게 하는 건 부모의 슬픔보다 설명 없는 이상한 공기입니다.

부모님 전화에는 목소리를 높여서

부모님 전화가 오면 받기 전에 목을 가다듬습니다. 밥 잘 먹고 다닌다고, 일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혼으로 이미 마음고생을 하신 분들께 걱정을 더 얹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전화를 끊으면 한숨이 길게 나옵니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이 알고 계십니다. 목소리가 밝을수록 더 걱정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 털어놓지 않아도 "요즘 좀 지치긴 해요. 그래도 버틸 만해요" 정도는 말해도 됩니다. 그만큼의 솔직함이 부모님께는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단체 대화방의 웃는 이모티콘

친구들 단체 대화방에 아이 사진과 여행 사진이 올라옵니다.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붙이고 화면을 닫습니다.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는 바쁘게 지낸다고 답합니다. 바쁜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인데, 그 말을 열 명이 보는 방에 쓸 수는 없습니다.

단체방은 원래 근황을 가볍게 나누는 자리라 무거운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친구 모두가 내 사정을 모른 채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체방 밖에서 한 사람에게만 따로 말을 거는 것, 거기서부터 다릅니다.

척이 하루를 버티게 해 준 것도 맞습니다

괜찮은 척을 당장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척 덕분에 회사 일이 무너지지 않았고, 아이의 하루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혼 직후 몇 달은 척이라도 해야 건너가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잘 버텨 온 것입니다.

문제는 척이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질 때입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전화에서도, 친구 앞에서도 척을 하고 있다면 하루 중 진짜 얼굴로 있는 시간이 한 시간도 없는 셈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몸이 먼저 탈을 냅니다.

괜찮으냐는 물음에 대한 세 번째 대답

괜찮으냐는 물음 앞에서 고를 수 있는 답이 두 개뿐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괜찮다고 웃거나, 전부 털어놓고 무너지거나. 그 사이에 대답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반쯤 괜찮아요. 오늘은 좀 별로고요." 짧고, 거짓이 아니고,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도 않습니다.

이 대답은 회사에서도, 부모님께도, 단체방에서도 통합니다. 듣는 사람은 내 표정을 보고 더 물어도 될지 고르고, 나는 다 말하지 않고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데서 숨이 조금 쉬어집니다. 척을 한꺼번에 내려놓기 어렵다면 이 문장부터 입에 붙여 둡니다.

괜찮지 않아도 되는 사람 한 명

필요한 건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내가 괜찮지 않다고 해도 놀라지 않고, 해결책을 서둘러 내놓지 않는 사람. 오래된 친구일 수도, 형제일 수도, 같은 일을 먼저 겪은 지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상담사가 그 자리를 맡아 줄 수 있습니다. 상담실은 처음부터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입니다.

털어놓을 때 첫마디를 이렇게 열면 편합니다. "해결해 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좀 들어 줄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조언 대신 듣는 쪽을 고릅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말하고 난 뒤 숨이 쉬어지던 느낌은 오래 남습니다.

무너지는 시간도 일정에 넣습니다

아이가 다른 부모에게 가는 주말 밤이나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의 삼십 분처럼, 아무 척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일부러 정해 둡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됩니다. 언제 무너져도 되는지 정해져 있으면 나머지 시간의 척이 덜 힘듭니다.

그 시간이 늘 울음으로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날은 멍하니 앉아 있다 끝나고, 어떤 날은 그 시간이 필요 없다고 느껴집니다. 다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 바로 전화합니다.

주차장 차 안의 오 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진짜 얼굴로 있는 시간이라면, 그런 오 분을 하루에 하나 더 만들어 줄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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