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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연애

사별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헤어진 사람을 둔 나와 떠나보낸 사람을 둔 그 사람. 같은 혼자여도 지나온 길이 다릅니다. 고인의 자리를 인정하면서 내 자리를 만드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사별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AI 모델 사진

그 사람의 거실 책장 세 번째 칸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한 여자가 웃고 있습니다. 처음 집에 간 날 그는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면 그는 며칠 동안 말수가 줄어듭니다. 기일이 있는 주입니다.

나는 이혼을 했고 그는 아내를 먼저 보냈습니다. 둘 다 혼자가 된 사람이지만, 만나 보니 우리가 지나온 길은 꽤 달랐습니다.

끝낸 결혼과 멈춘 결혼

이혼은 대체로 마음이 먼저 끝나고 서류가 뒤따릅니다. 미움이든 지침이든, 정리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별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채로, 혹은 한창 살아가던 중에 결혼이 멈췄습니다. 끝내고 싶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혼한 사람의 감각으로 사별한 사람을 헤아리면 자꾸 어긋납니다. 왜 아직 사진을 두느냐, 왜 반지를 서랍에 간직하느냐는 물음은 이혼의 문법입니다. 그에게 그 물건들은 미련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입니다. 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길 수 없고, 이길 필요도 없는 사람

사별한 사람을 만나는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비교입니다. 기억 속의 사람은 나이 들지 않고, 짜증을 내지 않고, 실수도 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좋은 장면만 남습니다. 살아 있는 내가 그 사람과 겨루면 반드시 집니다.

겨루지 않으면 됩니다. 그가 고인을 사랑했다는 것과 지금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첫째를 사랑한다고 둘째를 덜 사랑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끝까지 지켰던 사람이라는 점이 그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의 마음에 방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면, 그 방의 문을 닫으라고 요구할 까닭이 사라집니다.

사진과 기일 앞에서

집 안의 사진을 치워 달라고 먼저 요구하지는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 결정은 그의 몫이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몫이기도 합니다. 다만 내 마음이 불편한데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관계가 깊어져 그 집에 자주 머물게 되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진을 없애 달라는 게 아니야. 침실만큼은 우리 둘의 공간이었으면 해." 이 정도는 정당한 부탁입니다.

기일은 그가 초대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같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 조용히 곁에 서 있으면 되고,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면 다녀와서 먹을 따뜻한 밥을 준비해 두면 됩니다. 그날 연락이 뜸한 것을 서운해하지 않는 것,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배려입니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

그가 고인의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습니다. 같이 갔던 식당,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 듣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막지 않는 편이 관계에 이롭습니다. 말하지 못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에 그를 끌어당깁니다.

한계는 있습니다. 듣기 힘든 날에는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다. "오늘은 내가 좀 지쳐서 그 얘기는 다음에 듣고 싶어." 만날 때마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고인이라면, 그것은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니라 그에게 아직 애도의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아이와 고인의 가족

사별 가정의 아이에게 떠난 부모의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엄마이고 아빠입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는 주말에 다른 부모를 만나지만, 이 아이들은 사진과 기억으로만 만납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아이는 문을 닫습니다. 엄마 대신이 아니라 아빠의 친구로, 아주 천천히 다가가야 합니다.

고인의 부모와 왕래를 이어 가는 집도 많습니다. 손주를 보러 오는 외할머니에게 나는 딸의 자리에 들어온 낯선 사람입니다. 그분들의 서늘한 눈빛은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입니다. 인사를 드리고, 서두르지 않고, 아이와 그분들의 시간을 지켜 드리면 됩니다.

그 집 부엌에 서게 되는 날

관계가 깊어지면 그가 살던 집에 드나들게 됩니다. 고인이 고른 커튼, 고인이 쓰던 그릇이 그대로인 집입니다. 찬장을 열 때마다 남의 살림에 손을 대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바꾸자고 하면 그와 아이에게는 한 사람을 또 한 번 떠나보내는 일이 됩니다.

작은 것부터 내 것을 놓아 봅니다. 내가 쓰는 머그잔 하나, 욕실의 칫솔 하나. 그가 먼저 서랍을 비워 준다면 고마운 신호입니다. 함께 살 이야기가 나올 만큼 진지해졌다면 그 집을 고쳐 쓰기보다 두 사람이 새로 고른 집에서 시작하는 편이 모두에게 수월합니다. 고인의 물건은 간직할 것과 정리할 것을 그와 아이가 정하도록 맡겨 둡니다.

그의 말에 앞날이 들어 있는지

사별 뒤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떠난 사람을 배신하는 것 같고, 주변의 눈도 신경 쓰입니다. 그래서 다가왔다가 물러나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펴볼 것은 그의 말에 앞날이 들어 있는지입니다. 다음 달에 어디를 가자, 겨울에는 무엇을 하자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그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반대로 몇 달이 지나도 나를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내가 더 기다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기다림에도 기한을 두어야 내가 지치지 않습니다.

내 이혼이 그의 사별 앞에서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실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그는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고 나는 믿었던 생활을 잃었습니다. 잃어 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려 들지 않고 그 옆에 새 자리를 하나 만드는 것, 이 사랑은 그렇게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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