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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친구의 청첩장이 도착한 날

크림색 봉투를 뜯지 못하고 식탁에 올려 둡니다. 축하하는 마음과 가라앉는 마음이 같이 올 때, 결혼식에 갈지 말지와 그 자리에서 버티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친구의 청첩장이 도착한 날AI 모델 사진

우편함에 크림색 봉투가 꽂혀 있습니다. 두툼한 종이와 금박 글씨만으로 무엇인지 압니다. 대학 때부터 친했던 친구의 청첩장입니다. 전화로 미리 들어 알고 있었고, 그때는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봉투를 손에 들자 마음이 한 칸 내려앉습니다. 뜯지 않은 채 식탁에 올려 두고 커피를 내립니다. 봉투는 사흘째 그 자리에 있습니다.

기쁜 마음과 가라앉는 마음이 같이 옵니다

친구가 잘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닙니다. 축하하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그 옆에 다른 마음이 함께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도 저런 봉투를 돌린 적이 있었고, 그 결혼은 끝났습니다. 남의 시작이 내 끝을 비춥니다.

이 두 마음이 같이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속 좁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겪은 일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가라앉는 마음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런 마음이 있구나 하고 알아주는 편이 빨리 지나갑니다.

예식장이 유난히 버거운 까닭

결혼식은 이혼한 사람에게 지뢰가 많은 곳입니다. 혼인 서약을 읽는 목소리,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말, 신부의 손을 넘겨주는 아버지. 장면 하나하나가 내 결혼식 날과 겹칩니다. 그날의 나도 저렇게 웃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묻습니다. 남편은 같이 안 왔어? 아이는 몇 살이야? 모르고 묻는 말인데 대답할 때마다 한 번씩 찔립니다. 둥근 식탁에 부부끼리 나란히 앉은 사이에 혼자 앉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식장이 버거운 것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야 하는 자리와 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

모든 결혼식에 갈 의무는 없습니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예식장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면 가지 않는 것도 고를 수 있는 길입니다. 기준은 그 사람과의 사이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친구라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가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적습니다. 얼굴만 아는 사이라면 축의금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가지 못할 때는 미리, 직접 말합니다. 이유를 꾸며 낼 필요 없이 솔직해도 됩니다. "네 결혼은 정말 축하해. 그런데 내가 아직 예식장에 앉아 있기가 좀 힘들어. 식 끝나고 내가 밥 살게." 가까운 친구라면 이 말을 이해합니다. 결혼식 날의 한 시간보다 그 뒤에 둘이 마주 앉아 건네는 축하가 더 깊이 닿기도 합니다.

가기로 했다면 준비할 것들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버틸 장치를 마련해 둡니다. 혼자 가지 않는 것이 첫째입니다. 사정을 아는 친구와 함께 가서 나란히 앉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그 친구가 곤란한 질문을 대신 받아넘겨 주기도 합니다.

질문에 답할 문장도 정해 갑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고 한 줄로 닫습니다. "저 이혼했어요.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그 얘기는 다음에 해요." 웃으며 말하면 대부분 거기서 멈춥니다. 묻는 사람이 더 미안해할 테니 화제는 내가 돌려 줍니다. 신부 드레스가 예쁘다는 말이면 됩니다.

끝까지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예식만 보고 식사는 건너뛰어도 실례가 아닙니다. 신랑 신부에게 인사하고 사진을 찍었다면 할 일은 한 것입니다. 힘들어지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가면 오히려 오래 앉아 있게 됩니다.

축의금이라는 숙제

돈 문제도 마음에 걸립니다. 내 결혼식 때 받았던 축의금이 있습니다. 그 결혼은 끝났는데 갚아야 하나 싶습니다. 받은 것은 갚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때 그 친구는 내 결혼이 아니라 나를 축하하러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민망함도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재혼하게 되면 또 청첩장을 돌려도 되나 하는 걱정입니다. 그때 가서 정할 일이지만, 조용히 가까운 사람만 부르는 재혼식이 많아졌고 누구도 그것을 흉보지 않습니다. 오늘의 축의금을 훗날의 계산과 묶지 않고, 친구의 좋은 날에 보태는 마음으로 냅니다.

전 배우자와 겹치는 결혼식

부부가 함께 알던 친구의 결혼식이라면 전 배우자도 초대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식장에서 마주칠 생각을 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인공에게 물어봅니다. "혹시 그 사람도 와? 알고 가면 내가 마음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친구도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둘 다 참석한다면 서로 떨어진 자리에 앉고, 마주치면 고개만 숙입니다. 한 사람은 예식에, 한 사람은 피로연에 가는 식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날은 두 사람의 어색함이 아니라 친구의 결혼이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식장에서 눈물이 날 때

신부가 걸어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식에서 우는 하객은 흔하고, 아무도 까닭을 묻지 않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우면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그 눈물은 내 결혼이 실패했다는 설움만은 아닙니다. 저 자리에 서 있던 스물몇 살의 내가 떠올라서 흐르는 눈물입니다.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하려 했습니다. 끝이 어떻게 났든 그 진심까지 틀렸던 것은 아닙니다.

식이 끝난 저녁

힘든 것은 식장보다 돌아온 뒤입니다. 차려입은 옷을 벗고 조용한 집에 앉으면 낮에 참았던 것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의 계획을 미리 세워 둡니다. 함께 간 친구와 저녁을 먹고 들어오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둡니다. 서랍 속의 내 결혼사진을 꺼내 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날은 지나간 날을 들추기에 좋은 날이 아닙니다.

친구가 재혼하는 날이라면

청첩장의 주인이 나처럼 한 번 헤어졌던 친구일 때는 마음이 다르게 움직입니다. 식장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덜 아프고, 조금 설렙니다. 저 친구도 봉투를 다시 돌릴 용기를 냈구나 싶습니다. 두 번째 결혼식의 하객들은 첫 번째보다 조용히, 그리고 더 진하게 축하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다들 알기 때문입니다.

사흘 만에 봉투를 뜯습니다. 친구의 이름 옆에 낯선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날짜를 달력에 옮겨 적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청첩장 받았어. 예쁘더라. 그날 갈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남의 시작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은 내 끝을 어느 정도 지나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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