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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데이트

연인의 부모님 장례식, 가야 할까

만난 지 넉 달, 가족에게 인사한 적도 없는데 부고를 받았습니다. 조문부터 결혼식과 잔치까지, 연인의 집안일 앞에서 내가 설 자리를 짚어 봅니다.

연인의 부모님 장례식, 가야 할까AI 모델 사진

새벽 다섯 시에 문자가 와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만난 지 넉 달,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한 적은 없습니다. 답장을 쓰다 지우기를 되풀이합니다. 가야 할까. 가면 나를 누구라고 소개할까. 가지 않으면 서운해할까.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이런 것을 물어도 될까.

연인의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관계의 자리가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릅니다. 이혼을 겪은 사람끼리의 연애에서는 그 자리에 전 배우자와 아이까지 등장하니 셈이 더 복잡합니다.

먼저 물어봅니다

혼자 짐작해서 정하지 않는 것이 첫째입니다.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불쑥 찾아갔다가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고, 폐가 될까 봐 가지 않았다가 오래가는 서운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답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물을 때는 상대가 거절하기 쉽게 묻습니다. "내가 가도 괜찮을까. 가족들 보기 불편하면 솔직하게 말해 줘. 어느 쪽이든 서운해하지 않을게." 상을 당한 사람은 정신이 없어서 답이 늦을 수 있습니다. 재촉하지 말고, 답이 없으면 반나절쯤 뒤에 한 번만 더 묻습니다.

가기로 했다면

조문객이 몰리는 저녁 시간을 피해 조금 한산한 때에 갑니다. 그 사람이 나를 챙길 여유가 있는 시간이 좋습니다. 옷은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으로 단정하게 입습니다.

빈소에 들어가면 분향이나 헌화를 하고 영정 앞에 예를 갖춘 뒤 상주와 인사를 나눕니다. 종교에 따라 절 대신 묵념을 하기도 하니 앞사람을 따르면 됩니다. 인사는 길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세요" 한마디면 되고, 말이 나오지 않으면 고개만 숙여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누구냐고 물을 때의 대답은 그 사람에게 맡깁니다. 친구라고 소개하면 친구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렇게 인사합니다. 이 자리는 내 자리를 확인받는 곳이 아닙니다. 부의금은 내 이름으로 내되 금액은 가까운 지인 정도로 맞추면 무리가 없습니다. 식사를 권하면 잠깐 앉았다가 삼사십 분 안에 일어납니다. 밤새 곁을 지키는 일은 가족이 된 뒤의 몫입니다.

가지 않기로 했다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을 들어도 상처받을 일이 아닙니다. 어르신들께 설명할 기운이 없거나, 친척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중입니다.

가지 않는 대신 할 일이 있습니다. 부의금이나 근조 화환을 보내고, 답을 바라지 않는 문자를 남깁니다. "답장 안 해도 돼. 밥은 챙겨 먹어." 진짜 도움이 필요한 때는 장례가 끝난 뒤입니다. 손님이 다 돌아가고 집에 혼자 남는 첫 주가 가장 힘듭니다. 그때 반찬을 들고 찾아가거나 말없이 옆에 앉아 있어 주는 것이 빈소의 조문보다 깊이 남습니다.

전 배우자가 올지도 모르는 자리

돌싱의 장례식장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고인이 아이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라면 전 배우자가 아이를 데리고 조문을 오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 가능성을 미리 물어 두면 서로 덜 당황합니다. 마주칠 것 같다면 시간을 달리해서 가거나, 그 시간에는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배려입니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보내는 날에 부모의 새 연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고인과 남은 가족입니다.

결혼식과 칠순 잔치의 초대장

경사는 조사와 결이 다릅니다. 연인의 동생 결혼식이나 부모님 칠순에 같이 가자는 말은 가족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친척 수십 명 앞에 서는 일이고,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안에서 누구의 짝으로 불립니다.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기쁘게 가면 됩니다. 아직 이르다고 느낀다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는 가족분들을 그렇게 큰 자리에서 처음 뵙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 먼저 조용히 식사 한 번 하고 싶어." 거절하면서 다른 길을 내놓으면 상대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지키려는 것임을 압니다. 가지 않더라도 축의금이나 작은 선물로 축하의 뜻은 전합니다.

내 집안일에 그 사람을 부를 때

입장이 바뀌어도 원칙은 같습니다. 내 가족의 장례나 잔치에 연인을 부르고 싶다면, 그 자리에 누가 오는지와 그 사람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를 먼저 알려 줍니다. "이모들이 이것저것 물을 수 있어. 대답하기 싫은 건 내가 막아 줄게." 이 한마디가 있으면 상대는 훨씬 가벼운 걸음으로 옵니다. 오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을 때 그것을 애정의 크기로 재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어디까지가 내 자리인가

경조사 앞에서 드는 서운함은 대부분 자리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만큼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가족 앞에서는 친구로 소개되거나 아예 불리지 않습니다. 그 간격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소개하는 속도는 마음의 크기와 꼭 같지 않습니다. 이혼을 한 번 알렸던 사람은 부모에게 새 사람을 보이는 일에 유난히 신중합니다. 또 헤어졌다는 말을 하게 될까 봐 확실해질 때까지 미룹니다. 큰일이 지나간 뒤에 물어보면 됩니다. "가족분들께 나를 언제쯤 소개할 생각인지 궁금해." 다그치지 않고 묻는다면 상대도 자기 사정을 말해 줍니다.

슬픈 일과 기쁜 일은 관계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비춥니다. 앞에 나서지 못했더라도 뒤에서 챙긴 마음은 전해집니다. 장례가 끝나고 한참 뒤에 그 사람이 말할 것입니다. 그때 네가 보낸 문자를 몇 번이나 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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