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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연애

좋은 사람인데 설레지 않을 때

조건도 성격도 나무랄 데 없는데 마음이 조용합니다. 설렘이 사라진 것인지, 마음이 조심스러워진 것인지 구분해 봅니다.

좋은 사람인데 설레지 않을 때AI 모델 사진

세 번째 만남을 마치고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상대는 내 말을 잘 기억했고, 헤어질 때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도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창밖을 보는 마음이 이상할 만큼 평평합니다. 휴대폰을 꺼내 볼 생각도, 다음 약속을 기다리는 마음도 없습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더 곤란합니다.

설렘이 줄어든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혼을 지나온 사람의 마음에는 경보 장치가 하나 달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끌리면 그대로 달려갔지만, 이제는 끌리려는 순간 먼저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한 번 크게 다쳐 본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아무 느낌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로 읽어야 합니다. 정말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음이 움직이려는 것을 내가 누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뒤쪽이라면 설렘은 없는 게 아니라 대기 중입니다.

두근거림을 믿었던 지난날

한 가지 더 따져 볼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설렘이라고 불렀던 감정의 정체입니다. 연락이 올지 안 올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것, 상대의 기분에 따라 하루가 오르내리던 것을 우리는 흔히 사랑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돌아보면 그 두근거림의 꽤 많은 부분이 불안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사람 앞에서는 그 불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답장은 제때 오고, 약속은 지켜지고, 말과 행동이 같습니다. 심장이 뛸 일이 없으니 심심하다고 느낍니다. 평온을 지루함으로 잘못 읽는 셈입니다. 지난 연애가 롤러코스터였던 사람일수록 이 착각에 자주 빠집니다.

마음은 엉뚱한 장면에서 움직입니다

조용하던 마음이 달라지는 순간은 대개 근사한 식당이 아닙니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더니 문 앞에 죽을 두고 간 날, 지나가듯 말한 아이의 발표회 날짜를 기억하고 잘 끝났느냐고 물어 온 저녁, 길을 건널 때 말없이 차도 쪽으로 자리를 바꾸던 모습. 그런 장면이 쌓이다가 어느 날 문득 이 사람과 있으면 숨이 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런 호감은 불꽃보다 군불에 가깝습니다. 붙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붙으면 오래갑니다. 지난 결혼이 뜨겁게 시작해 차갑게 끝났던 사람이라면, 다른 온도로 시작하는 관계를 한 번쯤 겪어 볼 만합니다.

설레지 않는 것과 싫은 것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조용한 마음을 무조건 참고 만나라는 뜻은 아닙니다. 구분할 기준이 있습니다. 설렘은 없어도 되지만, 아래의 것들마저 없다면 그 사람은 아닌 쪽에 가깝습니다.

궁금함.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나 주말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지 살펴봅니다. 호기심은 호감의 가장 낮은 온도입니다.

편안함. 만나고 돌아온 날 몸이 덜 지쳐 있는지 봅니다. 맞지 않는 사람과의 두 시간은 야근보다 피곤합니다.

거부감이 없는 거리. 나란히 걸을 때 어깨가 닿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떠올려 봅니다. 몸은 머리보다 먼저 대답합니다.

이 셋 중 둘 이상이 있다면 마음은 뒤늦게 따라올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고, 만나러 가는 길이 숙제 같고, 손이 스치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다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만두는 편이 서로에게 낫습니다.

세 번은 만나 보라는 말

흔히 세 번은 만나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참고 견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첫 만남에서 긴장한 얼굴을, 두 번째에는 조금 풀린 얼굴을, 세 번째쯤에야 평소의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만남을 다르게 써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주 앉아 밥만 먹었다면 한 번은 함께 걷거나 무언가를 같이 하는 자리로 바꿉니다. 전시를 보든 시장을 구경하든, 상대가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식탁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던 매력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 번을 만나고도 마음이 그대로라면, 그때의 판단은 믿어도 됩니다.

기다리게 하는 일에도 예의가 있습니다

더 만나 보기로 했다면 상대에게도 지금의 온도를 알려 주는 편이 공정합니다.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마음이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라 시간을 두고 알아 가고 싶어요." 이 정도의 말이면 상대는 자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미지근한 태도만 보이면 상대는 혼자 추측하며 지칩니다.

스스로 기한도 정해 둡니다. 한 달이든 다섯 번의 만남이든, 그때까지 궁금함도 편안함도 자라지 않는다면 정중하게 그만두는 것이 상대의 시간을 아끼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붙잡아 두는 것은 친절이 아닙니다.

몸이 지쳐 있을 때는 아무도 설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상태입니다. 이혼 뒤 일과 살림과 아이를 혼자 떠맡은 사람은 감정을 쓸 여력 자체가 바닥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이 모자라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렘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같은 반응이라면 사람을 바꿀 일이 아니라 잠시 쉬어 갈 일입니다.

설렘은 관계의 입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떤 사랑은 번쩍 하고 시작하고, 어떤 사랑은 세 번째 만남의 지하철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다가 한참 뒤에야 온도를 갖습니다. 조용한 마음을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는 조금 더 만난 뒤의 내가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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