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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아이에게 늘 미안한 부모에게

잠든 아이의 이불을 올려 주며 오늘도 속으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죄책감이 아이에게 실제로 하는 일과, 미안함 대신 건넬 것을 이야기합니다.

아이에게 늘 미안한 부모에게AI 모델 사진

잠든 아이의 방에 들어가 흘러내린 이불을 올려 줍니다. 오늘 아이는 학원이 끝나고 혼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야근이 길어져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숨소리를 듣고 서 있다가 속으로 말합니다. 미안해. 어제도 한 말이고 그제도 한 말입니다. 이혼한 뒤로 이 말은 하루를 닫는 인사가 되었습니다.

미안함이 기본값이 된 사람들

이혼한 부모의 마음 바닥에는 대개 같은 문장이 깔려 있습니다. 내가 이 아이의 가정을 깼다.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든, 사정이 어땠든 이 문장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운동회에 혼자 가서 미안하고, 다른 집처럼 여행을 못 가서 미안하고, 아이가 풀이 죽어 보이면 다 내 탓 같습니다.

이 마음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데 사랑에서 나왔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로운 것은 아닙니다. 죄책감은 조용히 육아의 모양을 바꿉니다.

죄책감이 부모에게 시키는 일

미안한 부모는 갚으려 합니다. 사 달라는 것을 다 사 줍니다.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합니다. 숙제를 안 해도, 늦게까지 게임을 해도 이 아이는 이미 힘든 일을 겪었으니 하며 넘어갑니다. 혼내고 난 날에는 더 큰 미안함이 몰려와 다음 날 선물을 삽니다.

아이는 이것을 금방 읽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배웁니다. 하나는 부모의 미안함을 건드리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더 깊습니다. 나는 부모가 늘 미안해해야 할 만큼 딱한 아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불쌍하게 보면 아이도 자기를 불쌍하게 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이는 어떻게 듣는가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약속을 어겼을 때, 화풀이를 했을 때는 분명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혼한 부모의 미안해는 대상이 흐릿합니다. 네가 이런 집에서 자라게 해서 미안해. 이 말을 되풀이해 듣는 아이는 우리 집이 미안해야 할 만큼 나쁜 집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같은 마음을 다른 말로 건넬 수 있습니다. 혼자 저녁을 먹은 아이에게 미안해 대신 고마워를 말합니다. "오늘 혼자 잘 챙겨 먹었네. 엄마가 늦었는데 기다려 줘서 고마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딱한 아이가 되고, 고맙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한몫을 해낸 아이가 됩니다.

잃은 것과 지킨 것을 같이 봅니다

죄책감은 한쪽만 봅니다. 아이가 잃은 것, 그러니까 한집에 사는 두 부모와 예전의 살림만 셉니다. 반대쪽 저울에 올릴 것도 있습니다. 부모가 매일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것, 얼어붙은 식탁에서 눈치를 보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일인지는 그 집에 살아 본 사람이 압니다.

이혼이 아이에게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는 힘들었고 지금도 가끔 힘듭니다. 다만 그 결정이 아이에게서 빼앗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것으로부터 아이를 떼어 놓은 면도 있다는 것을 함께 봐야 공평합니다.

죄책감과 책임감은 다른 쪽을 봅니다

둘은 닮았지만 향하는 곳이 다릅니다. 죄책감은 지나간 일을 봅니다. 그때 내가 참았더라면, 다르게 했더라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으니 힘만 빠집니다. 책임감은 오늘을 봅니다. 오늘 저녁 이 아이에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죄책감에 쓰던 힘을 책임감으로 옮기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자리에서 할 일을 하나 떠올립니다.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게 해서 미안하다면, 일요일에 아이와 같이 일주일 치 주먹밥을 만들어 얼려 둡니다. 미안함은 마음에 남고, 주먹밥은 냉동실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닿는 것은 뒤쪽입니다.

모자란 시간에 대하여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미안해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일을 해야 하니 곁에 있어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힘이 되는 것은 시간의 길이보다 어김없음입니다. 하루 십 분이라도 매일 같은 때에 온전히 자기를 보는 시간이 있으면 아이는 그 십 분에 기대어 하루를 견딥니다.

잠들기 전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오늘 제일 좋았던 일과 제일 싫었던 일을 하나씩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휴대폰은 다른 방에 둡니다. 주말에 놀이공원을 가는 것보다 이 십 분이 아이의 마음에 더 깊이 쌓입니다.

허락하는 것으로 갚지 않습니다

규칙은 사랑과 반대가 아닙니다. 잘 시간을 지키게 하고, 게임 시간을 정하고, 잘못했을 때 바로잡아 주는 것은 아이에게 세상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혼으로 한 번 흔들린 아이일수록 변하지 않는 테두리가 있어야 편안합니다.

다른 부모와 선물로 겨루는 일도 그만둡니다. 저쪽에서 게임기를 사 줬다고 이쪽에서 더 큰 것을 사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아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흥정하는 법을 익힙니다. 우리 집에는 우리 집의 방식이 있다고 담담히 말해 주는 것이 아이를 덜 헷갈리게 합니다.

내가 웃는 것이 미안할 때

죄책감은 내 즐거움에도 손을 뻗습니다. 친구를 만나 웃다가, 누군가에게 설레다가 문득 아이 얼굴이 떠올라 가라앉습니다. 아이는 힘든데 나만 좋아도 되나 싶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벌주듯 아무 재미 없이 지냅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세상이 살 만한 곳인지를 가늠합니다. 늘 지쳐 있고 미안해하는 부모 곁에서 아이는 자기가 짐이라고 느낍니다. 부모가 웃고, 자기 삶을 가꾸는 모습을 보는 아이는 어른이 되는 일을 기대합니다. 내가 잘 지내는 것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꽤 큰 것입니다.

아이가 원망을 말하는 날

언젠가 아이가 직접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그 말은 칼처럼 들어옵니다. 변명하거나 사정을 설명하고 싶어지지만 참습니다. 그날은 듣는 날입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정말 미안해."

이때의 미안함은 앞에서 말한 것과 다릅니다. 막연히 딱하게 여기는 미안함이 아니라, 아이가 꺼낸 아픔을 정확히 받아 주는 사과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무너지지 않고 자기 원망을 들어 줄 때 비로소 그 일을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미안함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증거이지만 아이에게 건넬 선물은 못 됩니다. 아이에게 닿는 것은 오늘 저녁의 십 분과 지켜진 약속, 그리고 잘 지내는 부모의 얼굴입니다. 하루를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내일 아침에 보자는 말로 닫아 보는 것, 거기서부터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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