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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데이트

남자친구라는 말이 어색한 나이

마흔 넘어 생긴 연인을 남들 앞에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호칭과 말투, 소개하는 말에 담긴 관계의 온도를 살펴봅니다.

남자친구라는 말이 어색한 나이AI 모델 사진

월요일 아침, 탕비실에서 동료가 묻습니다. 주말에 강릉 다녀오셨다면서요, 누구랑 가셨어요. 대답하려다 말이 막힙니다. 남자친구랑요. 마흔여섯에 그 단어는 어쩐지 교복을 입은 것처럼 겉돕니다. 애인이라고 하자니 낯간지럽고, 아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그 사람에게 미안합니다. 얼버무리다 "그냥 친구요"라고 해 버리고 하루 종일 찜찜합니다.

다시 연애를 시작한 중년에게 호칭은 뜻밖의 걸림돌입니다. 이십대에는 고민해 본 적 없던 문제입니다.

부를 말이 없으면 관계도 흐릿해집니다

호칭은 사소해 보이지만 관계의 이름표입니다. 남에게 소개할 말이 없는 사이는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인지 그냥 자주 만나는 것인지, 말이 없으면 경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호칭이 정해지지 않아 불편하다면 그 불편을 들여다볼 만합니다.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그렇게 부를 만큼 관계가 정해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뒤쪽이라면 필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대화입니다.

남에게 소개할 때 쓰는 말

정답은 없고, 말마다 온도가 다릅니다. 가장 무난한 것은 "만나는 사람"입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어느 자리에서나 통합니다. "만나는 분이 있어요"라고 하면 직장에서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는 나이와 상관없이 써도 되는 말입니다. 쑥스러운 것은 처음 몇 번뿐이고, 듣는 사람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애인은 조금 더 진한 말이라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립니다. 오래 만났고 함께 사는 것까지 생각하는 사이라면 짝이나 동반자 같은 말도 씁니다. 재혼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삶을 나누는 사람을 가리키기에 알맞습니다.

피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옆에 있는데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준비가 덜 되어 그랬다 해도 상대에게는 지워진 느낌으로 남습니다. 어떻게 소개할지 미리 물어 두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 친구들한테 뭐라고 소개하면 좋겠어요."

둘이 있을 때는 뭐라고 부를까

처음에는 대개 이름에 씨를 붙입니다. 여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의외로 어렵습니다. 자기야는 닭살이 돋고, 이름만 부르기에는 조심스럽고, 오빠나 누나는 이 나이에 어색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억지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지내다 보면 둘만의 말이 생깁니다.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부르기도 하고, 처음 만난 날의 일화에서 별명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지난 결혼에서 쓰던 호칭은 무심코 튀어나오지 않게 살핍니다. 전 배우자를 부르던 말로 불리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호칭이 있는지도 한 번 물어봅니다.

말을 놓는 때

어른이 되어 만난 사이는 존댓말로 시작합니다. 언제 말을 놓을지는 정해진 것이 없지만, 한쪽만 놓는 것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먼저 반말을 하고 상대에게는 존댓말을 받는 모양은 연인 사이에 위아래를 만듭니다.

놓으려면 같이 놓습니다. "우리 이제 말 편하게 할까요"라고 제안하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존댓말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존대하며 십 년을 사는 부부도 있고, 그 말투가 다툴 때 선을 지켜 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말이 가까움의 증거는 아닙니다.

휴대폰에 저장한 이름

사소하지만 마음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석 달을 만났는데 여전히 성과 이름 석 자에 직장 이름이 붙어 있다면 상대가 우연히 봤을 때 서운해집니다. 그렇다고 하트를 줄줄이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내 휴대폰을 자주 본다면 아이가 봐도 괜찮은 이름으로 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름 두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다정합니다.

아이와 부모님 앞에서

아이에게 소개할 때는 관계를 규정하는 말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엄마 친구 누구 아저씨야" 정도로 시작하고, 아이가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는 아이가 고르게 둡니다. 아저씨, 이모, 삼촌, 혹은 이름에 님을 붙이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른이 정한 호칭을 따르라고 하면 아이는 그 말에 담긴 뜻까지 받아들이라는 압력으로 느낍니다.

부모님께는 조금 분명한 말이 좋습니다. 어른들은 애매한 소개를 들으면 스스로 결말을 지어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지하게 만나는 분이에요"라고 하면 관계의 무게가 전해지고, 재혼 날짜를 묻는 질문에는 "천천히 알아 가는 중이에요"라고 덧붙이면 됩니다.

호칭을 묻는 것은 관계를 묻는 것

"저를 주변에 뭐라고 소개하세요"라는 질문은 가볍게 들리지만 속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상대가 말을 돌리거나 한참 뜸을 들인다면 호칭보다 먼저 맞춰야 할 것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를 소개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단어가 어색한 것인지, 이 사람을 내 생활 안으로 들이는 것이 아직 망설여지는 것인지. 답에 따라 할 일이 달라집니다.

탕비실의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다음에 누가 물으면 한 번쯤 그대로 말해 봐도 좋습니다. 만나는 사람이랑 다녀왔어요. 입 밖으로 내고 나면 그 말은 생각보다 금방 내 것이 됩니다. 교복 같던 단어가 어느새 잘 맞는 외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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