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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법원 날짜만 기다리며 사는 석 달

재산 분할, 양육비, 양육권을 두고 이혼 절차가 길어지면 싸움보다 기다림이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이 시기에 자주 나오는 하소연에 하나씩 답했습니다.

법원 날짜만 기다리며 사는 석 달AI 모델 사진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하나 있습니다. 다음 기일입니다. 석 달 뒤입니다. 지난 기일도 석 달 전이었고 그 전 기일도 그랬습니다. 그사이 아이는 한 학년 올라갔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는데, 법원의 시간은 이상할 만큼 느리게 흐릅니다.

이혼은 도장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양육비를 얼마로 할지, 아이를 누가 키울지 다투기 시작하면 절차는 해를 넘기기도 합니다. 싸움 자체보다 기다림이 사람을 더 닳게 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자주 털어놓는 말에 하나씩 답해 봅니다.

변호사 사무실 번호만 떠도 가슴이 내려앉아요

점심을 먹다가 그 번호가 뜨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복도로 나갑니다. 삼 분짜리 통화였는데 자리에 돌아오면 국이 식어 있고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몸이 그 번호를 나쁜 소식과 묶어 기억한 것입니다. 사무실에 부탁해 둘 수 있습니다. 급한 일이 아니면 문자나 메일로 먼저 알려 달라고, 통화는 정해 둔 요일에 몰아서 하자고. 준비된 시간에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충격이 꽤 줄어듭니다.

물어볼 것도 미리 적어 둡니다. 통화하는 몇 분 동안은 머리가 하얘져서 정작 궁금했던 것을 못 묻고 끊습니다. 질문을 메모장에 모아 두었다가 한 번에 묻고, 들은 내용은 끊자마자 적습니다. 같은 걸 두 번 묻지 않게 되면 시간도 비용도 아낍니다.

상대가 낸 서면을 읽으면 며칠을 못 자요

상대 쪽 서면에는 내가 기억하는 결혼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기도 합니다. 한 적 없는 말, 부풀려진 일, 내 탓으로만 정리된 지난 시간. 소송에서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게 쓴다는 걸 알아도 문장 하나하나가 몸에 박힙니다.

그래서 서면은 혼자, 밤에 읽지 않습니다. 낮에, 할 수 있다면 믿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읽습니다. 처음에는 반박할 곳에 표시만 하고 덮습니다. 하나하나 답하는 일은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화가 치밀어 전 배우자에게 따지는 문자를 보내고 싶어지지만, 그 문자는 다음 서면에 그대로 붙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내 쪽의 기억도 미리 적어 둡니다. 어떤 일이 어떤 순서로 있었는지, 어떤 문자가 오갔는지 생각나는 대로 차례대로 적은 기록이 있으면 상대 서면에서 다르게 적힌 대목을 만나도 덜 흔들립니다. 반박할 근거가 이미 내 손에 있다는 감각이 밤잠을 지켜 줍니다.

친구들도 이제 제 얘기를 지겨워하는 것 같아요

처음 몇 달은 친구들이 열심히 들어 줍니다. 소송이 길어지면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듣는 쪽도 해 줄 말이 바닥납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입을 닫게 되고, 그때부터 혼자 끌어안습니다.

이야기할 곳을 나누는 편이 낫습니다. 법적인 고민은 변호사나 법률 상담에, 마음의 무게는 상담사에게 맡기고, 친구와는 소송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자리로 남겨 둡니다. "오늘은 재판 얘기 말고 맛있는 거나 먹자"고 먼저 말하면 친구도 숨을 돌립니다. 그런 저녁 하나가 한 주를 버티게 합니다.

다 포기하고 그냥 끝내 버리고 싶어요

지친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집니다. 그 마음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친 날 내린 결정은 몇 년 뒤의 생활비와 아이의 양육비에 그대로 남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그 마음을 변호사에게 그대로 말합니다. 조정으로 정리할 길이 있는지, 지금 합의하면 무엇을 내려놓게 되는지 숫자로 보여 달라고 합니다.

숫자를 보고도 끝내는 쪽이 낫다면 그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몇 달 더 다퉈서 더 받는 돈과, 그 몇 달 동안 잃는 잠과 일과 아이와의 시간을 한 저울에 올려 보는 일입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지친 밤에 충동적으로 정하지 않고, 잠을 잔 다음 날 아침에 정합니다.

아이가 눈치챈 것 같아요

아이는 압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러 베란다에 나가는 횟수, 아빠가 서류 봉투를 들고 한숨 쉬는 얼굴. 숨길수록 아이는 더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나이에 맞게 짧게 말해 줍니다. "엄마 아빠가 어른들끼리 정할 게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고 있어.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너랑 사는 건 그대로야." 그 뒤로는 아이 앞에서 통화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생각을 묻는 절차가 생기더라도 어느 쪽 편을 들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그 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연차도 돈도 바닥나고 있어요

기일마다 연차를 쓰고, 서류를 떼러 다니고, 비용이 나갑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소득 기준에 따라 무료나 적은 비용으로 소송을 도와주는지 확인해 봅니다. 회사에 사정을 다 말할 필요는 없지만, 믿을 만한 상사 한 명에게 "개인적인 법적 절차가 있어서 몇 달간 가끔 반차가 필요하다"고 말해 두면 매번 핑계를 지어내는 피로가 줄어듭니다.

양육비가 정해졌는데 들어오지 않는다면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상담할 수 있습니다. 판결이 나고도 싸움이 이어지는 것 같아 허탈하겠지만, 그 일은 혼자 쫓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소송이 길어지면 삶 전체가 사건 번호 하나에 묶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수록 소송을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 둡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 한 시간 동안 서류를 정리하고 변호사에게 보낼 질문을 적습니다. 그 밖의 시간에 생각이 떠오르면 한 줄만 적어 두고 다음 정리 시간으로 넘깁니다.

나머지 시간은 사건과 상관없는 일로 채웁니다. 아이와 가는 놀이터, 퇴근길의 수영장, 아무 의미 없는 드라마. 다음 기일이 석 달 뒤라면 그 석 달은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석 달이어야 합니다. 판결문은 결혼의 끝을 적어 줄 뿐, 그 뒤의 하루하루를 대신 살아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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