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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데이트

미안하다며 또 약속을 미루는 사람

한 번은 사정이고 세 번은 순서입니다. 늦고 미루는 상대에게서 사정과 무성의를 가르는 선, 서운함을 말하는 법, 내가 미루는 쪽일 때까지.

미안하다며 또 약속을 미루는 사람AI 모델 사진

연애 초반에 약속이 흔들리면 사람은 상대보다 자기를 먼저 의심합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 나이에 이런 걸로 서운해해도 되나. 두 번째 만남이 하루 전에 미뤄졌고, 다시 잡은 날은 당일 오후에 미뤄졌습니다. 이유는 매번 그럴듯했습니다. 회사 일, 아이 감기, 갑자기 올라오신 부모님. 그럴듯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괜찮아요, 다음에 봬요"라고 답하는 데는 삼 초가 걸렸고,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사흘이 걸렸습니다.

이혼을 지나온 사람은 이 서운함 앞에서 더 머뭇거립니다. 지난 결혼에서 서운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지금도 그 말이 목에 걸립니다.

한 번은 사정, 세 번은 순서

바쁜 어른들의 연애입니다. 약속이 한 번 깨지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열나는 아이를 두고 데이트를 고를 수는 없고, 고르지 않는 게 맞습니다. 봐야 할 것은 횟수보다 모양입니다. 같은 사람이 세 번 미뤘다면 그 세 번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봅니다.

무성의는 대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미루는 시점이 점점 늦어집니다. 처음엔 이틀 전이었는데 다음엔 당일 아침, 그다음엔 약속 한 시간 전입니다. 이유는 길어지는데 다음 날짜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미룬 쪽이 아니라 기다린 쪽이 다음 약속을 다시 꺼내고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뒤에 날짜가 붙어 있는가

정말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게 된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른 날을 내밉니다. "토요일이 안 되면 다음 주 수요일 저녁은 어때요?" 날짜가 구체적이고, 그 날짜를 미룬 사람이 먼저 꺼냅니다. 사정과 무성의를 가르는 선 가운데 이것이 가장 알아보기 쉽습니다.

"정리되면 연락드릴게요", "조만간 꼭 봬요"로 끝나는 사과는 문을 반쯤만 열어 둔 말입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이 관계가 그 사람의 달력에서 앞쪽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걸 알고 기다리는 것과 모르고 기다리는 것은 다릅니다.

십 분 늦는 사람, 사십 분 늦는 사람

늦는 것도 같은 눈으로 봅니다. 길이 막혀 십 분 늦으면서 출발할 때 미리 알리는 사람이 있고, 약속 시간이 지나 내가 "어디쯤이세요?"라고 보낸 뒤에야 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늦은 시간보다 알린 시점이 그 사람의 습관을 보여 줍니다. 미리 알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의 저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 번 만나 세 번 다 이십 분씩 늦는다면 그건 교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계입니다. 연애 초반은 누구나 가장 성의 있게 구는 때입니다. 그때 이 정도라면 일 년 뒤의 모습도 대략 짐작이 됩니다.

아이 때문이라는 말 앞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이입니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의심하는 것 같아 아무것도 묻지 못합니다.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약속을 미루는 사람은 대개 그 뒤가 비슷합니다. 아침에 열이 나면 아침에 알리고, 저녁에 아이가 좀 나아졌다는 한 줄을 보내옵니다. 다음에 "아이는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해열제를 몇 번 먹였는지까지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의 하루에 아이와 내가 같이 들어 있다는 표시입니다.

내가 아이 때문에 미루는 쪽이라면 처음부터 달력의 사정을 알려 두는 편이 낫습니다. "격주 주말은 확실하게 비어요. 평일 저녁은 아이 컨디션 따라 바뀔 수 있어요." 미리 들은 사람은 미뤄진 약속을 무성의로 읽지 않습니다.

세 번째에는 말해도 됩니다

두 번까지는 넘어가도 됩니다. 세 번째에는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참고 넘어가면 네 번째에 터지고, 터진 말은 늘 실제보다 크게 나갑니다. 말할 때는 상대의 사정을 의심하지 않고 내 쪽 사정을 말합니다.

"사정이 있었던 건 알아요. 그런데 세 번째라 저도 마음이 좀 쓰이네요. 저는 그날 저녁을 비워 두고 기다리는 편이라서요. 다음에는 확실한 날로 잡았으면 해요." 따지는 말이 없고 부탁은 하나뿐입니다. 이 정도 말도 꺼내기 어려운 사이라면 앞으로 더 큰 말은 더 꺼내기 어렵습니다.

말한 뒤에 돌아오는 대답

진짜 대답은 그다음에 옵니다. "그랬겠네요, 미안해요. 이번 주 안에 제가 시간 낼게요" 하고 실제로 시간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애가 아픈 걸 어떡해요" 하며 서운함 자체를 나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쪽은 실수를 한 사람이고, 뒤쪽은 다음에도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말을 할 사람입니다.

사과도 해명도 없이 답장만 짧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는 한 번 더 붙잡기보다 내 저녁을 돌려받는 쪽을 고릅니다. 다음 약속은 상대가 꺼낼 때까지 두고, 그동안 비워 두던 주말에는 다른 계획을 넣습니다.

미루고 있는 쪽이 나라면

반대 자리에 앉아 본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약속을 잡아 놓고 그날이 다가오면 몸이 무거워지고, 핑계를 고르다가 끝내 취소 문자를 보냅니다. 상대가 싫은 건 아닌데 만나러 나가는 일이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런지 본인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혼 뒤에 이런 일이 꽤 생깁니다.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 생각보다 겁나서, 마음이 앞서 약속을 잡고 몸이 뒤에서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렇다면 핑계보다 사실을 말하는 편이 상대에게 덜 잔인합니다. "제가 아직 마음의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아요. 자꾸 미뤄서 미안해요. 한 달에 한두 번,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만나도 될까요." 이 말을 들은 상대는 적어도 자기 탓을 하며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약속 하나 미뤄지는 일은 작습니다. 작아서 넘기게 되고, 넘기다 보면 내 쪽에서만 달력을 비워 두고 있습니다. 지금 그 대화창을 위로 올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날짜를 먼저 꺼낸 사람은 몇 번이나 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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