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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인원 1명으로 떠나는 첫 여행

숙소 예약 화면의 숫자를 2에서 1로 바꾸는 데도 마음이 듭니다. 이혼 후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을 가까운 곳부터, 혼밥과 혼숙까지 차근차근 짚었습니다.

인원 1명으로 떠나는 첫 여행AI 모델 사진

숙소 예약 화면에서 인원을 고르는 칸은 늘 2로 시작합니다. 빼기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숫자가 1이 됩니다. 손가락 하나로 끝나는 일인데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게 됩니다. 결혼하고 나서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도 없었습니다.

혼자 떠나는 첫 여행에는 두 마음이 같이 실립니다. 이 나이에 혼자 가서 뭘 하나 싶은 겁, 그리고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둘 다 진짜입니다. 겁은 거리를 줄이면 작아지고, 해방감은 일정을 비울수록 커집니다.

처음은 반나절이면 충분합니다

첫 여행을 멀리 잡으면 준비하다 지칩니다. 처음에는 기차나 버스로 두 시간 안쪽의 도시,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거리가 알맞습니다. 가 보고 싶던 오래된 시장 하나, 바다가 보이는 찻집 하나만 정하고 나머지는 비워 둡니다.

당일치기는 실패해도 부담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심심하면 일찍 돌아오면 되고, 좋으면 다음에 하룻밤을 붙이면 됩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여행으로 시작해야 두 번째 여행이 생깁니다.

차를 몰고 간다면 휴게소마다 쉬어 갑니다. 옆자리에서 말을 걸어 주던 사람이 없으니 졸음이 더 빨리 옵니다. 출발 전에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길게 만들어 두면 혼자 달리는 고속도로가 덜 심심합니다.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는 하루

겁이 지나가면 해방감이 옵니다. 몇 시에 일어날지, 점심을 거를지, 미술관 그림 한 점 앞에 삼십 분을 서 있을지 혼자 정합니다. 예전 여행은 늘 누군가의 피로와 기분과 입맛을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댁이나 처가에 들르는 일정이 끼어 있던 여행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첫 여행에서는 일부러 계획을 반만 세웁니다. 나머지 반은 그날 아침 마음 가는 대로 채웁니다. 오후 내내 숙소 창가에서 책만 읽다 저녁에 나가도 아무도 아깝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편한 사람인지 여행지에서 처음 알게 되기도 합니다.

2인분부터라는 메뉴판 앞에서

혼자 여행에서 처음 부딪히는 벽은 식당입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찌개나 고기는 대개 2인분부터 받습니다. 가게 앞에서 메뉴판을 보다 돌아서서 편의점 김밥을 사는 날도 있습니다. 창가 자리에 둘씩 앉은 사람들을 보면 혼자 들어가는 내가 괜히 눈에 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다들 자기 앞의 그릇을 보느라 바쁩니다.

길은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 사이, 손님이 뜸한 오후 세 시쯤 들어가면 혼자 앉아도 눈치가 덜합니다. 1인분이 되는지 미리 전화로 물어도 됩니다. 시장 안 국숫집이나 백반집, 주방 앞에 긴 자리가 있는 식당처럼 원래 혼자 오는 손님이 많은 곳을 고르면 마음이 편합니다. 처음 한두 번이 어렵지, 세 번째쯤부터는 메뉴판에서 1인분 표시를 먼저 찾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룻밤을 붙이는 날

당일치기가 몇 번 괜찮았다면 하룻밤을 붙여 봅니다. 혼자 묵는 첫 밤에는 숙소가 생각보다 큰 몫을 합니다. 너무 외진 펜션보다는 시내의 작은 호텔이나 프런트에 사람이 있는 곳이 낫습니다. 늦게 혼자 걸어 들어가도 불안하지 않은 길인지 지도로 미리 봐 둡니다.

방에 들어가면 문 잠금장치부터 한 번 확인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묵는 곳과 돌아올 날은 가족이나 친구 한 명에게 알려 둡니다. 혼자 가는 여행이지, 아무도 모르는 여행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데서 울컥합니다

바닷가 산책로에서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부부를 지나칠 때, 숙소 침대가 둘이 눕기 좋은 크기라는 걸 알았을 때, 신혼여행 때 들렀던 휴게소 간판이 창밖으로 지나갈 때. 혼자 여행에는 이런 순간이 끼어듭니다. 괜히 왔다 싶은 마음이 든다면 여행을 망친 게 아니라 여행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잠깐 앉습니다. 벤치든 찻집이든 앉아서 그 기분이 지나가게 둡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그런 시간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일정을 줄이고 숙소에 일찍 들어가도 됩니다. 계획을 바꾸는 데 아무와도 상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얼굴이 한 장도 없는 사진첩

돌아와서 사진첩을 열면 풍경과 음식뿐입니다. 누군가 찍어 주던 내 사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쓸쓸합니다. 휴대폰을 난간에 기대 놓고 타이머로 찍거나 작은 삼각대를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여행객에게 부탁하면 대개 기꺼이 찍어 줍니다. 부탁받은 쪽도 혼자 온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얼굴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혼자 여행에서는 내가 무엇을 찍었는지가 곧 내가 무엇을 봤는지입니다. 결혼 생활 동안 남이 고른 장소에서 남이 원하는 쪽을 보고 서 있던 사람이라면, 내 눈이 어디에 머물렀는지 사진첩이 알려 줍니다. 하늘을 이렇게 많이 찍는 사람이었나 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가 저쪽 집에 간 주말에

격주로 아이를 보내는 부모,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혼자 여행은 비어 있는 주말을 건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 물건만 남은 집에 있는 것보다 낯선 도시에 있는 편이 덜 허전합니다. 아이에게 미안해서 여행 이야기를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에 같이 가고 싶은 곳을 하나 찾아왔다고 말하면 아이에게도 그 여행은 기다릴 거리가 됩니다. 그 도시의 시장에서 산 엽서 한 장이나 작은 과자 한 봉지면 아이에게 건넬 이야기로 충분합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다음에 갈 곳을 하나 정해 둡니다. 꼭 가지 않아도 됩니다. 혼자서도 갈 데가 있다는 감각을 품고 돌아온 사람은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도 조금 다르게 걷습니다.

두 번째 여행은 처음보다 준비가 절반으로 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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