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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혼자 마시는 술이 매일이 되었을 때

금요일에만 따던 맥주가 어느새 매일 밤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 한 캔이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작게 줄여 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혼자 마시는 술이 매일이 되었을 때AI 모델 사진

밤 열 시, 아이 방의 불이 꺼지면 냉장고 문을 엽니다. 맥주 한 캔을 꺼내 거실 탁자에 앉습니다. 캔을 따는 소리가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처음에는 금요일 밤에만 그랬습니다. 그러다 수요일이 더해지고, 힘든 날이 더해지고, 이제는 마시지 않는 날을 세는 편이 빠릅니다. 분리수거하는 날 봉투를 들어 보고 그 무게에 잠깐 놀랍니다.

하루의 끝에 주는 상

혼자 마시는 술은 처음에 위로였습니다. 일하고, 아이를 챙기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하루를 버틴 나에게 주는 작은 상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고, 틀린 생각도 아니었습니다.

이혼한 뒤의 밤은 깁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집 안에 소리가 없습니다. 말을 걸 사람이 없는 그 시간에 맥주 한 캔은 친구 노릇을 합니다. 긴장이 풀리고, 조용한 것이 덜 무섭고, 잠이 옵니다. 문제는 좋은 것이 매일이 되면서 생깁니다.

스스로 물어보는 몇 가지

술이 습관을 넘어섰는지는 남보다 내가 먼저 압니다. 조용히 물어봅니다. 석 달 전보다 양이 늘었는가. 한 캔으로 시작했는데 두 캔, 세 캔이 되지는 않았는가. 마시지 않은 날에는 잠들기가 어려운가.

행동도 봅니다. 저녁 약속을 잡을 때 술 마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가. 빈 캔을 누가 볼까 봐 따로 싸서 버린 적이 있는가. 아침마다 오늘은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는 밤이 되면 냉장고 앞에 서 있는가. 아이가 엄마 또 술 마셔, 하고 물은 적이 있는가. 이 가운데 여럿이 내 이야기라면 한 번 멈춰서 볼 때입니다.

그 한 캔이 대신하고 있는 것

술을 줄이려면 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수면제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말동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 중 유일하게 나를 위해 쓰는 시간입니다.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해서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일을 알면 다른 것으로 바꿀 길이 보입니다. 말동무가 없어서라면 그 시간에 통화할 친구를 만듭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서라면 술 말고 다른 상을 고릅니다. 좋아하는 차와 과자, 미뤄 둔 연속극 한 편,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이십 분. 술이 하던 일을 그대로 비워 둔 채 술만 끊으려 하면 며칠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술이 재워 주는 잠

잠이 안 와서 마신다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마시면 금방 잠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잠은 얕습니다. 새벽 서너 시에 눈이 떠지고, 다시 잠들기 어렵고, 아침에 개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더 피곤하고, 피곤하니 밤에 또 술을 찾습니다. 술이 잠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잠을 술에 기대게 만드는 셈입니다.

며칠 술 없이 자 보면 처음 이틀 사흘은 뒤척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면 새벽에 깨는 일이 줄어듭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자기 전 한 시간은 화면을 멀리하는 것이 술보다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입니다. 잠 문제가 오래간다면 술이 아니라 병원에서 풀 일입니다.

줄이는 일은 작게 시작합니다

내일부터 한 방울도 안 마시겠다는 다짐은 대개 사흘을 못 갑니다. 지키지 못하면 자책하고, 자책하는 밤에 더 마십니다. 작게 시작하는 편이 오래갑니다.

집에 술을 쌓아 두지 않습니다. 마시고 싶은 날 한 캔만 사 오는 것으로 바꾸면 귀찮아서 건너뛰는 날이 생깁니다. 마시는 요일을 정합니다. 일주일에 사흘은 마시지 않는 날로 달력에 표시합니다. 큰 캔을 작은 캔으로 바꾸고, 냉장고의 그 자리에 탄산수를 채워 둡니다. 손이 가는 습관은 그대로 두고 손에 잡히는 것만 바꾸는 것입니다.

밤 열 시의 순서도 바꿔 봅니다. 아이 방의 불을 끄고 곧장 냉장고로 가던 걸음을 욕실로 돌립니다. 씻고 나오면 캔을 따고 싶은 마음이 한풀 꺾여 있습니다. 탁자가 아니라 침대에서 책을 펴는 것도 방법입니다. 술 마시던 자리에 앉지 않는 것만으로 꽤 달라집니다.

아이가 보고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에게는 까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밤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다쳤을 때 운전해서 병원에 데려갈 어른이 이 집에는 나뿐입니다. 그 어른이 취해 있으면 안 됩니다.

아이는 자는 것 같아도 많은 것을 압니다. 아침의 엄마 얼굴이 어떤지, 쓰레기통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부모가 힘든 날을 무엇으로 푸는지를 보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그 방법을 먼저 떠올립니다. 겁을 주려는 말이 아닙니다. 줄여 볼 까닭을 찾는다면 이것만 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혼자 줄이기 어렵다면

여러 번 해 봤는데 번번이 제자리라면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술은 몸이 기대게 되는 물질이고, 어느 선을 넘으면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가까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나 보건소에서도 상담을 해 줍니다. 술 문제로 병원에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겠지만 그곳에서는 흔한 진료입니다. 술 뒤에 가려져 있던 우울이나 불안이 함께 드러나 그쪽을 먼저 돌보게 되기도 합니다. 일찍 갈수록 가볍게 끝납니다.

술과 외로움과 연애

밤의 술은 연애에도 손을 댑니다. 취하면 외로움이 커지고, 그 김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헤어진 사람에게, 며칠 대화했을 뿐인 사람에게. 아침에 보낸 글을 확인하고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마신 날에는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는 것이 간단한 예방입니다.

술로 달래던 외로움을 급하게 사람으로 메우려는 것도 조심합니다. 맨정신의 저녁을 혼자 보낼 수 있게 된 뒤에 만나는 사람이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오늘 밤 열 시에도 냉장고 앞에 설지 모릅니다. 문을 열기 전에 한 번만 물어봅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술인지, 하루가 끝났다는 느낌인지. 뒤쪽이라면 주전자에 물을 올려도 됩니다. 캔 따는 소리 대신 물 끓는 소리로 하루를 닫는 밤이 일주일에 사흘쯤 생기면, 분리수거 봉투는 눈에 띄게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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