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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마흔에 다시 부모님 집 문을 열었다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고등학교 때 쓰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도와 패배감이 함께 드는 이 시간을 잘 지내고 다시 나오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마흔에 다시 부모님 집 문을 열었다AI 모델 사진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익숙한 대문 앞에 섭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한 번 숨을 고릅니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가방을 받아 들며 묻습니다. 밥은 먹었니. 안내받은 곳은 고등학교 때 쓰던 방입니다. 꽃무늬 이불이 깔린 침대, 책상 위의 졸업 앨범, 벽에 남은 테이프 자국. 스무 해 전에 떠난 방에 마흔의 내가 다시 서 있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돌아왔다는 것

이혼한 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집을 나누고 나니 혼자 방을 구할 돈이 모자라서, 일하는 동안 아이를 봐 줄 손이 있어야 해서, 혹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입니다. 받아 줄 집이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그런데 그 방에 누운 첫날 밤의 기분은 복잡합니다. 다행이라는 마음 옆에 끝내 여기로 돌아왔다는 쓴맛이 눕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나갔던 집에 가방 두 개로 돌아온 내 모습이 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느낌은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뒷걸음이 아니라 다시 뛰기 전에 숨을 고르는 자리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지낼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문턱을 넘으면 다시 자식이 됩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밖에서는 과장이고 팀장인데 이 집 문턱을 넘으면 열일곱이 됩니다. 어머니는 몇 시에 들어오느냐고 묻고, 아버지는 옷차림에 한마디 하고,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 두면 잔소리가 날아옵니다. 나도 모르게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부모에게도 낯선 일입니다. 다 키워 내보낸 자식이 상처를 안고 돌아왔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릅니다. 익숙한 방법은 예전처럼 챙기고 간섭하는 것뿐입니다. 이 구도를 깨는 것은 내 쪽에서 먼저 어른으로 구는 일입니다. 투정하지 않고, 부탁할 것은 부탁하고, 고마운 것은 말로 합니다. 내가 열일곱처럼 굴면 부모도 나를 열일곱으로 대합니다.

얹혀사는 것과 함께 사는 것

둘의 차이는 몫을 지는가에 있습니다. 액수가 작더라도 생활비를 냅니다. 부모가 됐다고 손사래를 쳐도 매달 같은 날 봉투를 드립니다. 그 돈은 부모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보다 내가 이 집의 손님이 아니라 식구라는 표시로서 의미가 큽니다.

집안일도 정해서 맡습니다. 저녁 설거지는 내가, 분리수거와 장보기는 내가.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는 생활이 석 달을 넘기면 어머니는 지치고 나는 눈치를 봅니다. 지낼 기간도 처음에 말해 둡니다. "일 년만 신세 질게요. 그동안 돈 모아서 나갈게요." 끝이 보이는 동거는 서로에게 너그럽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면

아이와 함께라면 한 겹이 더해집니다. 조부모가 아이를 봐 주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인데, 키우는 방식이 달라 부딪힙니다. 할머니는 밥을 떠먹이고 단것을 주고 텔레비전을 틀어 줍니다. 내가 안 된다고 한 것을 할아버지가 몰래 허락합니다. 아이 앞에서 "네 엄마가 유난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전부 내 방식대로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돌봐 주는 사람의 방식도 인정해야 합니다. 대신 양보하지 못할 것 두세 가지만 골라 부탁합니다. 잠자는 시간, 안전에 관한 것, 그리고 아이 앞에서 내 말을 뒤집지 않는 것. "다른 건 어머니 편하신 대로 하세요. 이것만 지켜 주세요." 아이를 혼내야 할 때는 조부모가 감싸더라도 내가 끝까지 맡습니다. 이 집에 살아도 아이의 부모는 나라는 것을 아이가 알아야 합니다.

밥상에서 듣는 한숨

함께 살면 부모의 걱정을 매일 듣습니다.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그 사람은 아니라고 했잖니. 애를 봐서라도 참지 그랬니. 반대로 얼른 좋은 사람 만나 다시 가야지 하는 말이 밥상에 오릅니다. 친척이 다녀간 날이면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집니다.

부모의 속상함은 받아 주되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막습니다. 한 번은 차분히 말합니다. "걱정하시는 건 알아요. 그런데 지난 얘기는 그만했으면 해요. 들을 때마다 제가 다시 그날로 돌아가요." 재혼 이야기에도 같은 방식으로 선을 둡니다. 그 뒤에 또 나오면 길게 대꾸하지 않고 화제를 돌립니다.

부모님 집에서 하는 연애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하면 사정이 묘해집니다. 통화하러 베란다에 나가는 모습이 학창 시절 같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거실 불이 켜져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는 질문도 받습니다.

숨기면 더 불편해집니다. 자세히 알릴 필요는 없지만 큰 줄기는 말해 둡니다. "가끔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더 진지해지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늦는 날은 미리 연락할게요." 어른으로서 알릴 것은 알리고, 사생활은 지키는 것입니다. 연인을 집에 데려오는 일은 부모가 편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미룹니다. 이 집은 내 집이기 전에 부모의 집입니다.

다시 나가는 날을 정합니다

부모님 집이 편해질수록 나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밥이 차려져 있고,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있고, 집세가 나가지 않습니다. 일 년이 삼 년이 되고, 그사이 부모는 늙고 나는 독립하는 힘을 잃습니다.

그래서 들어온 달에 나갈 계획을 세웁니다. 보증금으로 얼마를 모을지, 매달 얼마씩 저축할지, 언제쯤 방을 알아볼지 숫자로 적습니다. 부모에게도 보여 드립니다. 나가는 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가 바라는 것도 자식이 다시 제 발로 서는 모습입니다.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자주 오가는 것이 한집에서 서로 지치는 것보다 오래갑니다.

뜻밖에 얻는 것

이 시간에는 덤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뒤로 부모와 이렇게 오래 붙어 지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무릎이 언제부터 안 좋았는지, 아버지가 새벽에 무슨 생각으로 마당을 쓰는지 알게 됩니다. 스무 살에는 듣지 못했던 부모의 젊은 날 이야기를 저녁상에서 듣습니다.

이 방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밤에는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여기는 끝이 아니라 중간입니다.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다시 떠나는 법을 압니다. 이번에 나갈 때는 가방 두 개가 아니라, 다시 채운 통장과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을 들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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