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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연락 매너

힘들다는 연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전 배우자와의 다툼이나 아이 문제로 무너진 연인 곁에서, 해결사가 되지 않고 곁에 있는 법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아는 법을 날짜 순서대로 따라가 봅니다.

힘들다는 연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AI 모델 사진

밤 열한 시가 넘어 전화가 옵니다. 받자마자 한숨부터 들립니다. 전 배우자가 이번 달 양육비를 또 보내지 않았고, 아이는 학원에서 친구와 싸워 상대 부모에게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습니다. 듣는 동안 머릿속에서 할 말이 줄을 섭니다. 법원에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던데, 그 학원은 원래 말이 많았다던데.

그 말들은 대부분 그날 밤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첫날 밤에는 해결책을 주머니에 넣어 둡니다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고쳐 주고 싶어집니다. 연인이 아파하는 것을 듣는 일이 나도 괴로워서입니다.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상대를 위한 일이면서 내 불편을 빨리 끝내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날 밤 연인에게 필요한 건 대개 정답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가 끝까지 닿을 곳입니다. "많이 지쳤겠다. 지금 어디야, 집이야?" 이 정도면 됩니다. 몸이 어디에 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같은 물음이 거창한 위로보다 사람을 먼저 붙잡아 줍니다. 말이 길어지면 끊지 않고, 말이 끊기면 그 침묵을 서둘러 메우지 않습니다.

당장 그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집이라면 묻지 않고 찾아가는 일은 위로보다 부담이 됩니다. "내가 지금 갈까, 아니면 전화로 같이 있어 줄까?" 하고 고르게 해 주면 됩니다. 전화면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때가 많지만, 그렇게 물어 준 것만으로도 연인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다음 날은 작고 손에 잡히는 것 하나

밤새 쏟아 낸 사람은 아침이 되면 민망해합니다. 어제 너무 길게 말했다고, 괜히 짐을 지웠다고. 이때 "괜찮아, 언제든 말해" 하는 문자도 좋지만 손에 잡히는 것 하나가 더 오래 남습니다.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을 보내는 것, 퇴근길에 반찬 두 가지를 문 앞에 걸어 두고 오는 것, 오늘 저녁은 내가 그쪽 동네로 가겠다고 하는 것. 연인의 하루에서 일 하나를 덜어 주는 쪽이 말 열 마디보다 낫습니다. 다만 아이를 대신 데리러 가겠다는 제안처럼 그 사람의 양육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연인이 먼저 청하기 전까지 아껴 둡니다.

같이 화를 내 주는 일의 함정

연인이 전 배우자 때문에 힘들어하면 나도 화가 납니다. "그 사람 진짜 너무하네" 정도는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깎아내리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연인에게 그 사람은 지금도 아이의 엄마나 아빠입니다. 내가 더 세게 욕할수록 연인은 오히려 한발 물러서 그 사람을 두둔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부모가 남에게 욕먹게 둔 것 같은 불편함이 올라오는 겁니다. 화는 연인이 낸 만큼만 따라가고, 내 쪽에서 불을 키우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아이 문제에서는 한 걸음 뒤에 섭니다

아이 일로 힘들어할 때는 더 조심스럽습니다. "애를 너무 받아 주니까 그렇지" 같은 말은 맞는 말이라 해도 그 순간에는 부모 자격을 매기는 소리로 들립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내 경험을 꺼내고 싶어지는데, 그것도 연인이 물을 때 한 사례로만 건넵니다. "우리 애도 그맘때 비슷했어. 나는 그때 이렇게 했는데, 맞을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나는 애를 안 키워 봐서 다 알 수는 없지만,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진다." 아는 척하는 위로보다 이 정직한 한마디가 연인을 덜 외롭게 합니다.

대신 나서 주고 싶은 마음은 접어 둡니다

아끼는 사람이 당하는 걸 보면 직접 나서고 싶어집니다. 그 전 배우자에게 전화해 한마디 하고 싶고, 아이를 괴롭힌 친구의 부모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연인의 싸움을 더 크게 만드는 일입니다. 전 배우자 쪽에서는 새 연인이 끼어들었다는 사실 하나로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리고, 양육 문제에서 연인이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설 자리는 앞이 아니라 옆입니다. 연인이 그 사람에게 보낼 문자를 같이 다듬어 주는 것, 감정이 빠진 문장으로 고쳐 주는 것 정도가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입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을 때

힘든 일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 양육비 문제는 몇 달을 끌고, 아이의 학교 문제는 한 학기를 갑니다. 그사이 연인은 연락이 뜸해지고 만나도 말수가 적습니다.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개는 나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 쓸 힘이 다른 데로 다 빠져나가 있을 뿐입니다. 이 시기에는 가볍고 꾸준한 것이 좋습니다. 답을 바라지 않는 짧은 문자, 정해 둔 요일의 짧은 통화. 법적인 문제라면 혼자 붙들고 있지 않도록 법률구조공단이나 가정법원 상담 창구를 찾아봐 주는 정도는 내가 대신 해 줄 수 있습니다.

내 그릇의 크기를 압니다

위로하는 쪽도 사람입니다. 매일 밤 한 시간씩 남의 전 배우자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잠과 내 기분까지 그 집 사정에 묶입니다. 나도 이혼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남의 다툼을 듣다가 내 옛일이 올라와 더 지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오늘은 나도 좀 지쳐서 길게 듣기가 어려워. 내일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 연인을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오래 곁에 있으려고 숨을 고르는 말입니다. 연인의 힘든 시기가 몇 달째 두 사람 대화의 전부가 되었다면, 상담 같은 바깥의 도움을 함께 찾아보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고비가 지나가면 연인은 미안해하며 갚으려 들 겁니다. 그때 빚 계산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내게 힘든 밤이 오면 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줄 것이고, 그걸로 셈은 맞습니다. 위로는 한 번의 명대사보다 같은 자리에 계속 있어 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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