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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하다는 말을 삼키는 버릇

서운하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답합니다. 지난 결혼에서 굳은 그 버릇이 새 연애에서 어떻게 돌아오는지, 작게 꺼내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법.

서운하다는 말을 삼키는 버릇AI 모델 사진

서운해. 세 글자짜리 말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을 꺼내는 데 몇 달이 걸립니다. 내 생일 저녁에 그 사람이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먼저 잡았다는 걸 알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혹시 서운했냐는 물음에 웃으며 답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이 나이에 생일 같은 걸로 서운해하는 게 우스워 보일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쉽게 나옵니다. 그 말을 하고 혼자 삼키는 시간이 길 뿐입니다.

그 말을 하면 싸움이 났던 집

서운함을 삼키는 버릇은 대개 지난 결혼에서 굳었습니다. 서운하다고 하면 "또 시작이네"가 돌아오던 집. 말을 꺼낸 쪽이 예민한 사람이 되고, 다툼이 길어지고, 끝에 가서는 꺼낸 걸 후회하던 기억. 몇 번 그러고 나면 사람은 배웁니다. 말하지 않는 게 덜 아프다는 것을.

정반대의 집도 있습니다. 서운하다고 말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던 결혼입니다. 상대는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다음 주에 같은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이런 결혼을 지나온 사람은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어느 쪽이든 새 사람 앞에서도 입이 먼저 닫힙니다. 지금 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걸로, 라는 생각

마흔 넘어 하는 연애에는 이상한 체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어른이니까 웬만한 건 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연락이 하루 없었다고, 친구들 앞에서 나를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서운해하면 유치해 보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운함을 감정이 아니라 내 미숙함으로 분류해 버립니다.

남자들은 여기에 다른 짐을 하나 더 집니다. 남자가 이런 걸로 쪼잔하게 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서운함 자체를 없는 셈 칩니다. 여자들은 피곤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 삼킵니다. 이혼한 여자는 원래 까다롭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 본 사람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이유는 달라도 결과는 같습니다. 둘 다 입을 다물고, 둘 다 혼자 셈을 합니다.

그런데 서운함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열일곱에 서운했던 일은 마흔일곱에도 서운합니다. 달라진 건 그걸 꺼내는 방식을 고를 수 있게 됐다는 것 정도입니다. 넘기는 것과 삼키는 것은 다릅니다. 넘긴 일은 다음 날 기억나지 않고, 삼킨 일은 일주일 뒤에도 생각납니다. 일주일 뒤에도 생각난다면 말해야 하는 쪽입니다.

삼킨 서운함이 가는 곳

꺼내지 않은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고 모양을 바꿉니다. 답장이 짧아집니다. 만나면 괜히 피곤하다고 합니다. 상대가 웃긴 이야기를 해도 반 박자 늦게 웃습니다. 상대는 뭔가 달라졌다는 건 느끼는데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물어보면 또 괜찮다고 하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일에 터집니다. 약속에 오 분 늦었을 뿐인데 그동안 쌓인 것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상대는 오 분 가지고 이렇게까지 화를 낸다고 느끼고, 나는 그동안 참은 걸 몰라준다고 느낍니다. 둘 다 억울한 싸움입니다. 터지지도 않고 조용히 마음을 접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왜 끝났는지도 모른 채 이별을 듣습니다. 지난 결혼의 끝이 그런 모양이었던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작을 때, 웃으면서

서운함을 말하는 일을 큰 대화로만 생각하면 영영 못 꺼냅니다. 날을 잡고 분위기를 보고 할 말을 정리하다 보면 이미 때가 지나 있습니다. 작은 서운함은 그 자리에서 작게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아, 그 말 살짝 서운한데?" 웃으면서 해도 됩니다. 정색하지 않아도 마음은 건너갑니다.

처음엔 이 한마디도 어색합니다. 지난 결혼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말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말 작은 일부터 연습합니다. 내가 고른 영화가 별로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낸 사진에 답이 없을 때. 작은 서운함을 꺼내 보고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는지 봅니다. 가볍게 받아 주는 사람이라면 큰 서운함도 꺼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큰 서운함은 그 주를 넘기지 않게

생일, 아이 문제, 가족 앞에서의 태도처럼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건 얼굴을 보고 말하되 오래 묵히지 않습니다. 서운함에도 유통 기한이 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상대는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흐릿하고, 나는 그사이 이야기를 몇 배로 키워 놓습니다.

꺼낼 때는 싸우자는 게 아니라는 신호부터 줍니다. "싸우자는 건 아니고, 지난 토요일 일이 마음에 좀 남아서 얘기하고 싶어." 그리고 그 일 하나만 말합니다. 그동안 쌓인 목록을 한꺼번에 펼치지 않습니다. 하나를 말하고, 상대 이야기를 듣고, 그날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큰 서운함일수록 문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글로 쓰면 길어지고, 긴 글은 읽는 사람에게 판결문처럼 닿습니다. 문자로는 "주말에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정도만 남깁니다.

"그게 왜 서운해?"라는 대답

꺼냈는데 상대가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순간 예전 집의 공기가 돌아옵니다. 그래도 여기서 다시 닫지 않습니다. "당신한테는 별일 아닐 수 있어. 나한테는 그랬다는 거야." 서운함은 맞고 틀리고를 따질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행히 반응은 생각보다 순할 때가 많습니다. "몰랐어. 말해 줘서 고마워." 이 대답을 처음 들은 날 집에 와서 울었다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 결혼에서는 들어 보지 못한 말이라서입니다. 그런 경험이 한 번 생기면 다음 서운함은 덜 무겁게 꺼내집니다.

이번 주에 삼킨 서운함이 하나 있다면, 그건 지금 이 사람에게 아직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은 말입니다. 예전 그 사람과 같은 얼굴을 할지 전혀 다른 얼굴을 할지는 꺼내 봐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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