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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닫는 사람과 끝을 보려는 사람

다툼이 생기면 한 사람은 혼자 있어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 풀어야 합니다. 서로를 정반대로 읽는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정해 둘 약속.

입을 닫는 사람과 끝을 보려는 사람AI 모델 사진

한 사람이 말없이 차 키를 집어 듭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다른 한 사람이 그 등에 대고 말합니다. "지금 나가면 어떡해. 얘기 끝내고 가." 현관문이 닫히고, 남은 사람은 휴대폰을 쥐고 메시지를 연달아 보냅니다. 답이 없습니다. 나간 사람은 주차장 차 안에 앉아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자기가 관계를 지키려 애쓰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다투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일단 혼자 있어야 머리가 식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풀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사람. 이 둘이 만나면 싸움의 내용보다 싸우는 방식 때문에 더 크게 다칩니다.

입을 닫는 사람의 안쪽

말을 멈추는 사람은 대개 상대를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감정이 어느 선을 넘으면 머리가 하얘지고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심장이 뛰고, 무슨 말을 해도 후회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쪽을 고릅니다. 지난 결혼에서 큰 소리가 오가는 다툼을 오래 겪은 사람일수록 이 반응이 빠릅니다.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몸이 먼저 문을 찾습니다.

이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대답을 요구하면 일이 커집니다. 생각이 아니라 방어로 대답하게 되고, 그 대답은 대개 "몰라", "됐어", 아니면 진심과 다른 날 선 한마디입니다. 그 한마디를 하지 않으려고 나가는 것인데, 붙잡히면 끝내 그 말을 하고 맙니다.

끝을 보려는 사람의 안쪽

그 자리에서 풀려는 사람도 집요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다툼이 끝나지 않은 채 상대가 사라지면 버려진 느낌이 듭니다.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까, 저 사람이 돌아오기는 할까. 지난 결혼에서 상대가 며칠씩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벌을 주던 기억이 있다면 이 불안은 훨씬 커집니다. 그 집에서 침묵은 이별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따라갑니다. 방문 앞에서 얘기 좀 하자고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겁니다. 상대가 멀어질수록 더 다가갑니다.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아직 괜찮은 거지, 그 한마디를.

서로를 정반대로 읽는 두 사람

엇갈림은 해석에서 생깁니다. 쫓는 사람에게 상대의 침묵은 무관심이나 벌로 보입니다. 물러나는 사람에게 상대의 재촉은 공격이나 통제로 보입니다. 한쪽이 물러날수록 다른 쪽은 쫓고, 쫓을수록 더 물러납니다. 저녁 메뉴로 시작한 다툼이 어느새 "당신은 늘 도망가", "당신은 숨을 못 쉬게 해"로 바뀝니다. 싸움의 주제가 싸우는 방식 그 자체가 됩니다.

이혼한 사람 가운데는 이 고리를 지난 결혼에서 끝까지 돌아 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 연애에서 같은 장면이 시작되면 더 겁이 납니다. 또 이렇게 되는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가 다릅니다. 이런 고리가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습니다.

싸우기 전에, 사이좋은 저녁에

이 약속은 다투는 중에는 만들 수 없습니다. 둘 다 기분이 괜찮은 저녁에 정합니다. "우리 싸울 때 나는 좀 혼자 있어야 하고, 당신은 바로 풀어야 하잖아. 그럴 때 어떻게 할지 정해 두자." 정해 둘 것은 세 가지입니다.

신호. 물러나야 하는 사람이 쓸 말을 정합니다. "나 지금 머리가 너무 뜨거워. 한 시간만 줘." 이 말이 나오면 쫓는 쪽은 붙잡지 않기로 합니다. 대신 물러나는 쪽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않기로 합니다.

시간.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숫자로 말합니다. 한 시간이든 오늘 밤까지든 끝이 정해져 있으면 기다리는 쪽이 버틸 수 있습니다. 하룻밤을 넘기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둡니다.

돌아오는 쪽. 시간이 되면 물러났던 사람이 먼저 돌아옵니다. 셋 중에 이것이 가장 무겁습니다. 쫓던 사람이 다시 찾아가지 않아도 상대가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겨야, 다음 다툼에서 쫓는 힘이 약해집니다.

기다리는 쪽의 한 시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한 시간은 깁니다.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되풀이하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하며 이야기를 키웁니다. 이 시간에 할 일을 미리 정해 두면 덜 힘듭니다. 동네를 한 바퀴 걷거나, 샤워를 하거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한 줄로 적습니다. 그 한 줄이 이번 다툼의 진짜 주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꼭 보내고 싶다면 하나만 보냅니다. "기다릴게. 천천히 와." 이 한 줄은 물러난 사람에게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걸 알려 줍니다. 열 통의 메시지는 그 자리를 오히려 좁힙니다.

돌아온 사람의 첫마디

돌아온 사람이 먼저 한마디를 건넵니다. 사과가 아니어도 됩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이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린 사람은 그동안 쌓인 불안을 쏟아 내지 않고 다툼의 원래 주제로 돌아갑니다. 왜 나갔느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싸움이 하나 더 생깁니다.

아이와 함께 사는 집이라면 하나를 더 정해 둡니다. 아이 앞에서는 신호만 주고받고, 나머지는 아이가 잠든 뒤로 미룹니다. 아이는 큰 소리보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그 뒤의 침묵에 더 예민합니다. 부모의 이혼을 한 번 지나온 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약속이 깨지는 날도 옵니다

정해 둔 대로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쫓는 사람이 참지 못하고 전화를 열 번 걸고, 물러난 사람이 한 시간을 세 시간으로 늘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런 약속은 한 번에 몸에 붙지 않습니다. 다음 날 차분할 때 "어제는 내가 못 지켰어"라고 말하는 것까지가 약속입니다.

몇 번 지키다 보면 다툼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같은 문제로 다퉈도 덜 다칩니다. 쫓던 사람은 기다릴 줄 알게 되고, 물러나던 사람은 돌아오는 길을 압니다. 차 키를 집어 드는 손은 그대로여도,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한마디가 붙습니다. "한 시간 뒤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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