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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엄마는 왜 결혼 안 해? 아이가 먼저 묻는 날

부모의 연애를 반대하는 아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서 결혼하라고 조르는 아이의 말 밑에는 저마다 다른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엄마는 왜 결혼 안 해? 아이가 먼저 묻는 날AI 모델 사진

"엄마, 지우네는 새아빠 생겼대. 엄마도 결혼하면 안 돼?"

학원 가는 차 안에서 아홉 살 딸이 창밖을 보며 한 말입니다. 대답을 고르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고, 그날은 "엄마가 생각해 볼게" 하고 넘겼습니다. 아이가 연애를 싫어할까 봐 조심하던 부모에게 이런 말은 반갑기보다 당황스럽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이마다 품은 마음이 다릅니다. 자주 듣는 말 몇 가지를 놓고 그 밑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반 애들은 다 아빠가 있어"

어린아이가 재혼을 말할 때는 대개 가족의 모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족 그림을 그리는 날, 운동회에서 아빠들이 달리기를 하는 시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본 네 식구의 저녁상. 아이는 그 장면에 자기 집이 끼지 못하는 게 서운합니다. 엄마의 행복보다 남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있습니다.

이 말에는 새 사람보다 지금의 우리 집 이야기를 먼저 들려줍니다. "우리 집은 둘이라서 좋은 것도 있잖아. 너는 뭐가 좋아?" 그리고 운동회 날 같이 달려 줄 삼촌을 찾는 것처럼, 아이가 빠졌다고 느끼는 장면을 하나씩 채워 줍니다. 가족 모양에 대한 서운함은 결혼보다 그런 장면에서 먼저 풀립니다.

"아빠 혼자 밥 먹으면 불쌍해"

주말에만 아빠를 만나는 아이가 일요일 저녁 돌아가는 차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반찬 두어 개 놓인 식탁, 불 꺼진 거실을 아이는 다 봤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는 한참 말이 없습니다. 아이 앞에서 들킨 것 같아서입니다. 이 아이는 부모를 돌보고 싶어 합니다.

고마운 마음이지만 그대로 두면 안 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외로움을 자기가 풀어야 할 숙제로 여기는 아이는 어른 걱정을 짊어진 채 자랍니다. 그러니 걱정을 돌려받습니다. "아빠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아빠 밥은 아빠가 챙길 수 있어. 너는 다음 주에 뭐 먹고 싶은지만 생각해 와." 다음 만남에서 정말로 잘 챙겨 먹는 모습을 보여 주면 말보다 그쪽이 아이를 안심시킵니다.

"나 대학 가면 엄마 혼자잖아"

사춘기를 지난 아이의 재혼 이야기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진심 어린 걱정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금 미안한 해방감입니다. 집을 떠날 날은 다가오는데 혼자 남을 부모가 마음에 걸리고, 누군가 곁에 있어 주면 자기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남을 엄마가 마음에 걸려 집에서 가까운 학교만 고르려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허락을 줍니다. 떠나도 된다는 허락입니다. "엄마는 너 가고 나면 엄마 생활 할 거야. 누굴 만나든 안 만나든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해. 넌 너 갈 데 가." 아이가 듣고 싶은 건 결혼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혼자서도 괜찮다는 확인입니다.

"나도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외동인 아이는 재혼 이야기를 동생으로 꺼내기도 합니다. 친구가 동생 자랑을 하고 온 날, 혼자 노는 게 지겨운 일요일 오후. 아이 머릿속에서 결혼은 동생이 생기는 방법입니다. 이 말에 어른의 사정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생 있는 집이 부럽구나. 혼자라 심심할 때가 많지." 마음을 먼저 알아준 다음 사촌이나 친구네와 보내는 주말을 늘려 줍니다. 아이가 바라는 건 대개 동생이라는 사람보다 같이 놀 누군가입니다.

"그 아저씨랑 결혼하면 안 돼?"

만나는 사람을 아이가 이미 알고 좋아하게 됐다면 질문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고, 저녁을 먹고, 숙제를 봐 준 사람입니다. 아이는 그 사람이 계속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부모에게는 가장 무거운 질문입니다. 두 어른도 아직 모르는 답을 아이가 먼저 묻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기대가 커질수록 혹시 헤어지게 됐을 때 아이가 잃는 것도 커집니다. 거짓 없이, 그러나 문을 닫지 않고 답합니다. "엄마도 그 아저씨 좋아해. 그런데 결혼은 어른 둘이 오래 생각해서 정하는 거라 아직은 몰라. 정해지면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해 줄게."

아이의 말이 등을 떠밀 때

이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부모 쪽에 이상한 압박이 생깁니다. 아이가 원하니 서둘러야 하나 싶고, 혼자 키우는 지금이 모자란 집처럼 느껴져 미안해집니다. 솔직히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아이는 다른 집을 부러워했구나 싶어서입니다.

그 서운함은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의 바람은 부모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나이의 상상입니다. 재혼은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아니고, 두 어른이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한 뒤에야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원해서 서두른 결혼이 흔들리면 그 무게는 아이가 다시 집니다. 내가 하자고 해서 그랬다고.

거꾸로 아이의 말을 핑계로 삼고 싶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애가 원해서, 애한테 아빠가 필요해서. 새 사람에게도 아이에게도 공평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재혼을 한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과 살고 싶어서여야 합니다. 그래야 힘든 날이 와도 아이 탓을 하지 않습니다.

대답보다 먼저 하는 질문

어떤 말이 나오든 첫마디는 같아도 됩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놀란 얼굴은 감추고 궁금한 얼굴로 묻습니다. 대답을 들어 보면 앞의 어느 마음인지 대개 보입니다. 가족 그림인지, 부모 걱정인지, 떠나고 싶은 마음인지, 그 사람이 좋은 건지.

한 번에 다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질문이네. 엄마가 생각해 보고 주말에 다시 이야기하자." 미뤄 둔 이야기를 정말 주말에 다시 꺼내 주면, 아이는 자기 질문이 허투루 넘겨지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아이가 결혼하라고 조르는 시기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갑니다. 그 말을 들은 날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합니다. 아이가 바라는 게 새 가족일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도 괜찮다는 확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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