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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만남

밥해 줄 사람을 찾는 것 같은 연애

세 번째 만남에 요리는 잘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궁금한 것인지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울 사람이 궁금한 것인지 가려 보는 법입니다.

밥해 줄 사람을 찾는 것 같은 연애AI 모델 사진

식사가 끝나 갈 무렵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요리는 좀 하세요? 저는 혼자 살다 보니 집밥이 제일 그립더라고요. 웃으며 넘겼습니다. 한 달 뒤 처음 그의 집에 갔을 때 싱크대에는 며칠 치 그릇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멋쩍게 말했습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다 이렇죠. 역시 집에는 여자 손이 닿아야 해요. 농담처럼 들렸지만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찾는가,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는가

이혼한 뒤 다시 짝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밥을 해 줄 사람, 아이를 돌봐 줄 사람, 아픈 부모를 모실 사람, 생활비를 대 줄 사람. 전 배우자가 떠나며 비어 버린 자리에 누군가를 앉히고 싶은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은 처음에는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얼마 지나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이 고마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일을 멈추면 다정함도 멈춘다는 것을.

처음 몇 번의 대화에서 들리는 것

이런 기대는 일찍 새어 나옵니다. 질문을 들어 보면 압니다. 나에 대해 묻는 것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줄 아는지에 몰려 있습니다. 요리는 하는지, 아이를 좋아하는지, 어른 모시는 것은 괜찮은지, 일은 계속할 생각인지.

자기 사정을 말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애들이 엄마 손길을 그리워해서요,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제가 일을 해야 해서요, 혼자 벌어서는 빠듯하더라고요. 사정 자체는 딱하고 거짓도 아닙니다. 다만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에게 그 사정의 해결을 기대하는 눈빛이 보인다면, 이 만남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기대가 있는 것 자체는 흠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년의 재혼에 생활의 기대가 섞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싶고, 아플 때 돌봐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살림이 둘이면 든든하겠다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랑과 필요는 원래 섞여 있습니다.

문제는 그 흐름이 한쪽으로만 갈 때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여럿인데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받는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면 저울이 기운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해 주는가. 내가 힘든 날 이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가려내는 질문들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혼자서 자기 생활을 꾸리는 사람인지 보는 것입니다. 가볍게 물어봅니다. 혼자 지내실 때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주말에 집안일은 어떻게 하세요. 서툴러도 해 먹고 치우며 사는 사람과, 누가 해 줄 때까지 손을 놓고 있는 사람은 대답이 다릅니다.

집에 가 보면 더 분명합니다. 깔끔할 필요는 없습니다. 볼 것은 어지러운 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치워야 하는데 바빴다고 하는 사람과, 여자가 없어서 이렇다고 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의 반응도 봅니다. 죽을 사 들고 오는 사람이 있고, 그럼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호의가 역할로 굳는 순간

이런 관계는 대개 내 쪽의 선의에서 시작됩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반찬을 싸 줍니다. 간 김에 설거지를 하고, 셔츠를 다려 줍니다. 상대는 고마워하고 나는 뿌듯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쯤부터 고맙다는 말이 줄어들고, 다섯 번째에는 반찬이 떨어졌다는 연락이 옵니다.

연애 초반에 얹은 일은 금세 당연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고받는 모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반찬을 해 갔다면 다음에는 그 사람이 밥을 삽니다. 그의 집에서 내가 요리했다면 설거지는 그가 합니다. 한 번은 일부러 손을 놓아 봅니다.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당신이 차려 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기꺼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걱정을 덜어도 됩니다.

아이의 엄마 아빠를 구하는 사람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이 지쳐서 도움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연인에게 처음부터 양육자의 자리를 기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의 숙제를 봐 달라, 주말에 아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 늘어난다면 이 사람은 연인보다 육아를 나눌 사람이 급한 것입니다.

그 자리를 덥석 받으면 나중에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아이와 정이 든 뒤에는 관계에 문제가 있어도 아이 때문에 떠나지 못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부모인 그 사람의 몫이고, 나는 곁에서 거드는 사람이라는 순서를 초반에 세워 둡니다.

간병과 돈의 기대

더 무거운 기대도 있습니다. 재혼하자마자 편찮은 부모를 모시게 되거나, 상대의 빚과 생활비가 내 수입에 얹히는 경우입니다. 살림을 합친 뒤에야 알게 되면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기 전에 말로 꺼냅니다. 부모님을 누가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재혼하면 그 일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생활비는 어떻게 나눌 생각인지, 내가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지만, 이 질문에 그건 차차 정하자고 넘어가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답을 정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답에서 나는 일을 맡는 쪽입니다.

혼자 살 줄 아는 두 사람

함께 잘 사는 사람들은 혼자서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 밥을 차려 먹고, 제 옷을 빨고, 제 아이와 부모를 책임지는 사람. 그런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에게 해 주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선물이 됩니다. 안 해 줘도 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해 줄 때 고맙습니다.

다음에 그 사람이 집밥 이야기를 꺼내면 웃으며 되물어 볼 만합니다. 저도 누가 해 주는 밥이 그리워요. 다음에는 한번 차려 주실래요. 그 말에 난감해하며 말을 돌리는지, 서툰 솜씨로 찌개를 끓여 내는지를 보면 됩니다.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서는 사람과는 긴 세월도 같이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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