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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다 큰 자녀에게 연애를 고백하는 일

서른이 다 된 딸 앞에서 쉰여섯의 엄마가 숟가락만 만지작거립니다. 성인 자녀에게 연애를 알리는 일은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숙제입니다.

다 큰 자녀에게 연애를 고백하는 일AI 모델 사진

오랜만에 딸과 점심을 먹는 자리입니다. 스물아홉 살 딸은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고, 쉰여섯의 엄마는 듣는 척하며 숟가락만 만지작거립니다. 오늘은 말하려고 불렀습니다. 엄마가 만나는 분이 있어. 그 한 문장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세 번째입니다. 회사 면접보다 떨립니다.

어린아이보다 어려운 상대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설명하고 아이가 따라옵니다. 성인 자녀는 다릅니다. 자기 의견이 있고, 부모의 지난 결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증인이며, 때로는 부모보다 세상 물정에 밝습니다. 그래서 고백이 아니라 심사를 받는 기분이 됩니다.

자녀 쪽에서도 낯선 일입니다. 부모를 엄마와 아빠로만 봐 왔지 연애하는 한 사람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옵니다. 처음 반응이 차갑더라도 그것이 마지막 대답은 아닙니다.

자녀의 걱정은 따로 있습니다

성인 자녀가 부모의 연애를 반기지 못할 때 입으로 하는 말과 속에 있는 걱정은 다릅니다. 입으로는 그 나이에 무슨 연애냐고 합니다. 속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먼저 다른 부모에 대한 의리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나 혼자 지내고 있다면 어머니의 새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 배신처럼 느껴집니다. 다음은 부모가 속을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외로운 부모에게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 이야기를 자녀는 뉴스에서 많이 봤습니다. 집과 재산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계산도 있습니다. 입 밖에 내기 민망해서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부모가 아플 때 누가 돌보게 되는지, 명절은 어떻게 되는지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 걱정들을 알고 시작하면 자녀의 날 선 말에 덜 다칩니다. 반대처럼 들리는 말의 절반은 부모를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알립니다

"엄마가 누굴 좀 만나도 될까"라고 물으면 자녀는 곤란해집니다. 부모의 행복을 자기가 허락하거나 막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연애는 자녀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묻지 말고 알립니다.

"엄마가 만나는 분이 있어. 몇 달 됐고, 좋은 분이야. 네가 다른 데서 듣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고 싶었어." 여기까지 말하고 자녀의 반응을 기다립니다. 어떤 사람인지 물으면 답하고, 말이 없으면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축하를 받아 내려 하지 않는 것이 요령입니다.

말하는 자리와 순서

자녀가 여럿이면 순서가 고민입니다. 한 명에게만 먼저 말하면 그 아이는 형제에게 비밀을 지켜야 하는 짐을 집니다. 되도록 같은 날, 따로따로 말하는 방법이 무난합니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발표하면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속마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명절이나 가족 행사 자리는 피합니다. 그날의 분위기가 그 소식으로 덮이고, 자녀는 다른 가족들 앞에서 표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오는 것은 더욱 이릅니다. 소식을 듣는 것과 얼굴을 보는 것 사이에는 자녀가 정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돈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가장 꺼내기 어려운 주제가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피하면 자녀의 의심은 그 사람을 향합니다. 부모 쪽에서 먼저 말해 주는 편이 모두에게 낫습니다.

"집이랑 돈 문제는 너희가 걱정하지 않게 내가 미리 정리해 둘 거야. 재혼을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할지는 너희와 상의하고 정할게." 혼인신고를 하면 배우자가 상속인이 되는 등 법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으니, 재혼까지 생각한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정리해 두겠다고 말해 줍니다. 그 사람과도 이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이야기해 봅니다. 재산 이야기에 불쾌해하지 않고 자녀들이 걱정할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태도가 자녀를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소개입니다.

반대에 부딪혔을 때

자녀가 끝내 싫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설득하려 들수록 다툼이 됩니다. 자녀의 감정은 인정하고, 결정은 내가 지킵니다. "네가 불편한 건 알겠어. 그 마음을 바꾸라고 하지는 않을게. 그래도 엄마는 이분을 계속 만날 거야. 네가 준비되면 그때 같이 밥 한번 먹자."

자녀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그 희생은 자녀에게 빚으로 남고, 부모에게는 원망으로 남습니다. 반대로 자녀를 서운하게 하면서 서둘러 살림을 합치는 것도 권하지 않습니다. 연애는 이어 가되 속도는 자녀의 마음이 따라올 만큼 늦추는 것이 가운데 길입니다.

소개는 천천히, 호칭은 자녀가 정합니다

자녀가 만나 보겠다고 하면 짧은 식사부터 합니다. 그 자리에서 가족처럼 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손을 잡거나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는 모습은 자녀에게 아직 낯섭니다. 그 사람에게도 미리 말해 둡니다. 아이들이 차갑게 굴어도 당신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고.

자녀가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는 자녀에게 맡깁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자녀도 있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자녀도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을 바라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손주가 있다면 손주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로 불리는 일도 자녀 부부가 정할 몫입니다.

자녀는 다 자라 자기 삶을 꾸렸습니다. 부모가 그 독립을 받아들였듯, 자녀도 부모의 남은 삶이 부모의 것임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 한 문장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딸은 놀라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대개는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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