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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회복·자존감

외로워서 만난 사람과 좋아서 만난 사람

혼자 먹는 저녁 식탁의 맞은편이 유난히 비어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인지, 누구라도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가려 봅니다.

외로워서 만난 사람과 좋아서 만난 사람AI 모델 사진

이인용 식탁에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놓습니다. 젓가락을 들다가 맞은편 의자에 눈이 갑니다. 이사 올 때 두 개를 샀는데 하나는 앉은 사람이 없습니다. 저기 누가 앉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곧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한 달째 연락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저 의자가 비어 있는 것이 싫은 걸까. 국이 식는 동안 답을 찾지 못합니다.

빈 의자가 사람을 고를 때

이혼한 뒤의 외로움은 결이 다릅니다. 혼자 살던 때의 외로움이 아니라 둘이 살다 혼자가 된 외로움입니다. 저녁 식탁, 일요일 오후, 아픈 날 밤처럼 누군가 있던 자리마다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 구멍을 메우고 싶은 마음이 사람을 찾게 합니다.

이때 찾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을 사람입니다. 마침 다정하게 말을 걸어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덜 외롭고 싶은 마음은 처음에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스스로도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배고플 때 장을 보면

빈속으로 장을 보러 가면 필요 없는 것까지 담게 됩니다. 외로울 때 사람을 고르는 일도 비슷합니다. 기준이 낮아지고, 평소라면 걸렸을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투가 거친 것도 솔직해서 그렇다고 넘기고, 약속을 자주 어기는 것도 바빠서 그렇다고 이해합니다.

이혼하고 첫 한두 해가 특히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받는 관심은 달고, 누군가 내 하루를 궁금해한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이 시기에 만난 사람과 급하게 살림을 합쳤다가 다시 헤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판단을 대신할 때 일이 꼬입니다.

가려 보는 질문들

완벽하게 나눌 수는 없어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은 있습니다. 먼저,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입니다. 그 사람의 자리에 비슷하게 다정한 다른 사람을 넣어도 내 마음이 같다면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다정함입니다.

언제 생각나는지도 봅니다. 일이 바쁘고 즐거운 낮에도 문득 떠오르는지, 조용하고 쓸쓸한 밤에만 떠오르는지. 밤에만 그리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밤이 문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이 궁금한지도 단서입니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과 요즘 하는 생각이 궁금한지, 아니면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귀가 아쉬운 것인지. 만나서 주로 내 이야기만 하고 돌아온다면 뒤쪽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가장 정직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혼자서도 괜찮았던 날, 그런 날에도 이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가.

외로움에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만

그렇다고 외로워서 시작한 만남이 전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관계가 그렇게 시작합니다. 덜 외롭고 싶어서 만났는데, 만나다 보니 그 사람의 웃는 버릇과 일하는 태도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새 그 사람이라서 좋아집니다. 시작한 까닭과 이어 가는 까닭은 달라져도 됩니다.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여러 달을 만났는데도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있기 싫은 저녁에만 연락한다면 그 관계는 제자리입니다. 상대는 사람으로 만나고 있는데 나는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로 만나고 있는 것이고, 그 차이는 언젠가 상대도 알게 됩니다.

사람을 약처럼 쓰면 생기는 일

외로움을 덜려고 만나는 관계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많아집니다. 매일 연락해 주기를, 주말을 다 내어 주기를, 내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달려와 주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그 구멍을 전부 메워 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기대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식탁의 빈 의자는 한 사람이 앉으면 채워지지만, 마음의 빈자리는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동무의 자리,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 나를 걱정해 주는 자리. 연인이 그 가운데 몇을 맡을 수는 있어도 전부를 맡을 수는 없습니다. 전부를 바라면 상대는 지치고, 나는 여전히 허전합니다.

유난히 빨리 깊어지는 관계

외로움은 속도를 냅니다. 만난 지 한 달에 서로의 집 열쇠를 나누고, 두 달에 아이를 소개하고, 석 달에 살림을 합치자는 말이 나옵니다. 두 사람 다 외로웠다면 이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깊어진 관계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빨리 내린 결정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특히 아이와 집이 걸린 일은 그렇습니다. 지금 이 서두름이 그 사람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것인지, 혼자인 상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따져 봅니다. 뒤쪽이라면 큰 결정은 계절이 두 번 바뀔 때까지 미룹니다. 정말 맞는 사람이라면 반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헤어진 직후에 만난 사람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한 연애에는 흔히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가장 힘든 시기를 건너게 해 준 다리입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리는 건너고 나면 뒤에 남습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될수록 그 사람이 달리 보이고,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났는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때가 옵니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은 정직함뿐입니다. 시작할 때 말해 둡니다. "저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직 제 마음이 어디쯤인지 저도 잘 몰라요. 천천히 만나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도 곁에 있겠다는 사람은 자기 뜻으로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아무 말 없이 기대어 놓고 다 나은 뒤에 떠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혼자의 저녁이 견딜 만해야 고를 수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연애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혼자인 저녁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혼자가 너무 괴로우면 누구든 붙잡게 되고,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합니다. 떠나도 괜찮은 사람만이 머물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연인이 맡을 수 없는 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웁니다. 말동무의 자리에는 오랜 친구와 형제가, 저녁 식탁의 자리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해 둔 약속이, 주말의 빈 시간에는 몸을 쓰는 일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덜어 내고도 남는 자리,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자리가 연인의 몫입니다.

상대도 외로워서 나를 만나는 것 같다면

반대쪽에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그저 혼자이기 싫은 것인지. 내가 아니라 누가 와도 같았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럴 때는 돌려 말하지 않고 물어봐도 됩니다. "저를 만나면서 어떤 점이 좋아요?" 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는지, 혼자 있기 적적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들어 봅니다.

둘 다 외로워서 만난 사이라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나면 서두르지 않게 됩니다. 서로를 목발 삼아 걷다가, 걸을 만해졌을 때도 손을 잡고 싶은지 보면 됩니다.

식은 국을 데워 다시 식탁에 앉습니다. 맞은편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고 밥을 끝까지 먹어 보기로 합니다. 혼자 먹는 저녁이 괜찮은 날에도 그 사람 생각이 난다면, 그때 전화를 걸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 전화는 빈 의자가 아니라 내가 거는 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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