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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재혼 준비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의 연애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놀이터 벤치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에 며칠뿐인 부모의 시간과 새로운 사랑을 함께 지키는 법입니다.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의 연애AI 모델 사진

격주 토요일 아침 열 시,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무릎에는 지난번에 아이가 두고 간 작은 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십 분 뒤면 아이가 뛰어나옵니다. 휴대폰에는 연인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습니다. 오늘도 잘 다녀와요. 고맙고 미안합니다. 이 사람과 사귄 뒤로 둘째 주와 넷째 주 주말은 늘 비워 두었습니다.

한 달에 나흘뿐인 부모

아이와 따로 사는 부모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습니다. 격주 주말이면 한 달에 나흘, 방학을 더해도 일 년의 대부분을 떨어져 지냅니다. 그래서 그 나흘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주말에 연인과의 약속을 겹치지 않는 것, 그 자리에 연인을 데려가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은 이 연애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아이와 살지 않는다는 조건이 연애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주말 일정만이 아닙니다. 눈에 덜 띄는 곳에서 더 자주 걸립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보일 때

함께 사는 아이가 없으면 겉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퇴근이 자유롭고, 주말의 절반이 비어 있고, 집에 아이 물건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개받는 자리나 프로필의 자녀 칸 앞에서 유혹이 생깁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고만 해 두면 되지 않을까.

같이 살지 않아도 나는 아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고, 그 뜻까지 알려 주는 편이 맞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살고 저는 이 주에 한 번 만나요. 매달 양육비를 보내고, 학교 행사에는 가려고 해요." 내 주말과 월급의 한쪽이 이미 아이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사람과, 아이는 저쪽에서 키우니 없는 셈이라고 여기고 시작한 사람은 일 년 뒤에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죄책감이라는 동승자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의 마음에는 늘 미안함이 타고 있습니다. 아침밥을 차려 주지 못하고, 아플 때 곁에 없고, 학예회를 영상으로 봅니다. 그런 처지에 연애를 하며 웃고 있는 자신이 뻔뻔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도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불행하다고 아이가 덜 외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이 주에 한 번 만나는 부모의 얼굴을 유심히 봅니다. 지쳐 있고 쓸쓸한 얼굴보다 잘 지내는 얼굴을 볼 때 아이는 마음을 놓습니다. 아빠 걱정을 내려놓고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내 삶을 돌보는 일은 아이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짐을 덜어 주는 일입니다.

새 살림의 예산은 양육비를 뺀 나머지입니다

연애가 깊어져 함께 살 이야기가 나오면 지출이 늘어납니다. 그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큰 고정 지출이 양육비입니다. 줄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양육비는 형편껏 조정하는 돈이 아니라 아이에게 지는 책임입니다. 새 살림의 예산은 그 돈을 먼저 떼어 놓고 남은 것으로 짭니다. 이 순서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어야 살림을 합친 뒤에 그 돈이 다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연인의 아이와 내 아이

연인에게 함께 사는 아이가 있다면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집 아이와는 평일 저녁을 같이 먹고 숙제를 봐 주는데, 정작 내 아이는 이 주에 한 번 봅니다. 남의 아이에게 다정한 내 모습에 죄책감이 듭니다.

내 아이도 언젠가 알게 됩니다. "아빠는 그 애랑은 맨날 같이 있잖아." 이 말에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할 일은 내 아이와의 시간을 더 단단히 하는 것입니다. 만나는 날을 어기지 않고, 그날만큼은 온전히 그 아이에게 집중하고, 만나지 않는 날에도 연락을 이어 갑니다. 연인의 아이에게 잘하는 것과 내 아이에게 미안한 것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아이가 먼 도시에 살 때

전 배우자가 아이를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간 경우에는 만남 자체가 여행입니다. 편도 세 시간을 달려가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주말이 통째로 갑니다. 교통비와 숙박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연인과 쓸 주말은 더 줄어듭니다.

이 사정은 숨길 수도 줄일 수도 없으니 달력을 펴고 함께 봅니다. 아이를 보러 가는 주말, 연인과 보내는 주말,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쉬는 주말을 미리 나눕니다. 방학에 아이가 며칠씩 와 있는 기간은 일찍 알려 둡니다. 연인이 그 도시까지 동행해 내가 아이를 만나는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합류하는 커플도 있습니다. 아이를 만나는 자리에 끼지 않으면서 먼 길의 수고를 나누는 방법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약속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초등학생 때는 아빠 오는 날을 손꼽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달라집니다. 학원이 있다고,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만남을 미룹니다. 와서도 휴대폰만 봅니다. 떨어져 사는 부모는 이때 크게 흔들립니다. 내가 연애를 해서 아이가 멀어진 것은 아닌지 자기를 탓하기도 합니다.

대개는 아이가 제 나이대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부모도 같은 시기에 같은 뒷모습을 봅니다. 서운함을 아이에게 쏟지 않고 방식을 바꿉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대신 저녁 한 끼를 먹고,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데려다주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평소의 짧은 연락이 끈이 됩니다. 시험은 어땠는지, 그 게임은 깼는지.

새 집에도 아이의 자리를 둡니다

재혼하거나 살림을 합칠 때 따로 사는 아이는 계획에서 빠지기 쉽습니다. 매일 사는 식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빠의 새 집에 처음 왔을 때 자기 물건이 하나도 없으면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고 단번에 압니다.

방 하나를 내어 줄 형편이 못 되어도 됩니다. 아이의 이불과 칫솔, 잠옷을 넣어 둔 서랍 한 칸이면 됩니다. 냉장고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현관에 아이 슬리퍼가 있는 집. 이것은 함께 살 사람과 미리 이야기해 둘 일입니다. 내 아이가 손님이 아니라 식구로 드나드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지가 재혼 전에 확인할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녁 식사 중에 걸려 오는 전화

연인과 함께 있는 저녁에 아이의 전화가 오면 받습니다. 이 일을 연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계의 앞날을 보여 줍니다.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고, 번번이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새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의 부모가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모 노릇을 하는 시간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아이와의 하루를 지켜 낸 사람이 나머지 날들에 연인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됩니다. 아이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연인과의 약속도 오래 지키지 못합니다. 이 연애에서 아이는 걸림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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